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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07. 2021

나비의 슬픔

김기림, '바다와 나비'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The Sea and A Butterfly 

                 Kim, Ki-rim     


As no one says how deep the sea is,

A white butterfly never fears it.     


Flying down to the sea which looks like a bluish radish field,

The butterfly returns like a princess, exhausted

With its dampened wings.     


Heartbroken by the March sea with no flower,

The butterfly has a bitter new moon around its wrist.    


한 폭의 그림이었다. 초승달 걸린 검푸른 바다 위를 나는 한 마리 나비. 튀어 오르는 파도에서 꽃향기를 맡았나 보다. 하지만 꽃은 없고 찬 물방울에 날개만 적시고 돌아서는 나비는 먼 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공주처럼 처연히 젖은 날개를 퍼덕인다. 3월의 바다는 아직도 차가운데 나비 허리에 감긴 초승달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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