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림, '바다와 나비'
바다와 나비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 무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 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The Sea and A Butterfly
Kim, Ki-rim
As no one says how deep the sea is,
A white butterfly never fears it.
Flying down to the sea which looks like a bluish radish field,
The butterfly returns like a princess, exhausted
With its dampened wings.
Heartbroken by the March sea with no flower,
The butterfly has a bitter new moon around its wrist.
한 폭의 그림이었다. 초승달 걸린 검푸른 바다 위를 나는 한 마리 나비. 튀어 오르는 파도에서 꽃향기를 맡았나 보다. 하지만 꽃은 없고 찬 물방울에 날개만 적시고 돌아서는 나비는 먼 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공주처럼 처연히 젖은 날개를 퍼덕인다. 3월의 바다는 아직도 차가운데 나비 허리에 감긴 초승달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