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쉬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했던 사람들, 함께 나눈 기억들을 뒤에 남기고 가는 길은 너무나 외롭고 허황했습니다. 그래서 낯익은 그곳에 잠시 멈춰 섭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춥고, 불필요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을까? 나그네는 어두운 저녁의 호숫가에 서서 회한과 아쉬움을 못내 털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조롱 말조차 나의 길을 재촉합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뒤로해야 할 날이 온 것을 나그네만 모르고 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그 모든 소란과 번잡함이 벌써 그립습니다. 너무 조용했어요. 바람 소리도 흩날리는 눈송이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모양입니다. 홀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그 깊은 심연 속으로 계속 가야 합니다. 그곳에 다시 사랑이 있으리라, 삶의 애환이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이제 떠나면 이전의 그 많은 날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겠죠. 그래도 새로운 약속을 향해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쉽지 않은 길일 것 같습니다.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길고 먼 길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야겠죠. 그곳에 또 다른 숲이 있겠죠. 가다 보면 계절도 바뀌어 찰랑이는 호수 물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리는 친구도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