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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7. 2021

세상에 뿌린 말

조병화 :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조병화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No Matter When I Leave This World...

                        Cho, Byong-wha     


No matter when I leave this world,

I will say this;

“I have spread so many empty words.”

Please forget all about it.     


No matter when I leave this world,

I will say this;

“I loved you.”

Please forget all about it.     


No matter when I leave this world,

I will say this;

“Thanks for your endless grace of love.”

Please forget all about my ingratitude.    


Ah, no matter when I leave this world,

I will say this;

Please forget all.      


퇴직을 한 지 꼭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1982년 한 전문대학의 영어과 야간수업을 시작으로 4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학생들과 만나왔지만 코로나로 제자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서운함이 없지는 않지만 선생과 학생의 만남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법이니 혹여나 내 말 가운데 그들의 마음에 새겨질 한 마디가 있기를 바랍니다. 조병화 시인의 시를 읽는 순간 첫 연의 ‘세상을 어지럽히는 말들’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 역시 그랬을까?’ 어지러운 말은 아니더라도 별 의미 없는 텅 빈 말들을 뿌려놓은 것은 아닐까? 평생을 말로 학생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내 말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가진 것은 몇 번이나 될까? 알량한 지식의 전달은 차치하고, 단 한마디 누군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었을까?     


수많은 제자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했다.’라고. 그리고 못난 선생을 애정으로 바라봐준 그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학생들 뿐 아니라 힘들 때 손 잡아준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을 잊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허튼 말, 허튼짓이 있었다면 부디 잊어주기 바랍니다. 나머지 삶 동안은 좀 더 말을 아껴야겠습니다. 좀 더 진지해지고 정직해야겠습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말만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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