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Sep 09. 2021

아, 낙엽 그리고 추억

나명욱 : 낙엽

낙엽 

           나명욱        


떨어지는 것이 어디 낙엽뿐이랴 

우리들의 젊음의 꿈과 사랑과 소망이 

떨어져 아프노니     


노랗게 변하는 것이 낙엽뿐이랴 

온전한 곳 없어도 

이기로 추하게 변해가는 모습에 괴로우니     


빛 잃어 메말라가는 것이 낙엽뿐이랴 

메마른 입술 거칠어지는 인정에 

낯 설은 웃음만 맴돌아 쓸쓸하니     


비바람에 흩어져 날리는 것이 낙엽뿐이랴 

계절 따라 친구 따라 

영원하겠다는 약속 다 부질없음이니     


가볍게 내려앉아 부서지는 것이 어디 낙엽뿐이랴 

피고 지는 일도 이제 나의 몫이 아님을 깨달아 

모두 버리고 자유로워지니     


Falling Leaves 

            Na, Myong-ook     


Do only the falling leaves come down to the ground? 

Our dream, love and wish in those green days

Have also fallen with great pain.     


Do only the falling leaves turn yellow? 

With nothing unchanged

I feel afflicted with myself turning so ugly.    


Do only the falling leaves run dry and fade away? 

With my lips dried and nature going wild

I feel sad with a strange smile.     


Do only the falling leaves blow and scatter in the wind and rain? 

With seasons and friends going away

I find all the promises of love in vain.     


Do only falling leaves softly lie down and break into pieces? 

Aware that coming and going is not my share,

I let everything go and feel free now.      


가을의 냄새가 짙습니다. 아직 낮에는 남아있는 열기에 더위를 느끼기도 하지만 하늘에도, 바람에도, 마음에도 가을이 묻어납니다. 매년 이맘때면 떠오르는 시와 수필이 있죠. 아마도 모두의 기억에도 여전히 남아있을 그 추억의 구절들. 구르몽(Remy de Gourmont, 1858~1915)의 시는 내게 언제나 그 가을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노란 낙엽이 바람에 따라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휩쓸면 왠지 함께 걷던 그녀의 어깨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곤 하였습니다. 이 가을에 한 번 더 입 속에 우물거리는 그의 시 ‘낙엽’.     


시몬, 나무 잎 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아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어린 시절 시인이 부르던 시몬은 누구일까 궁금했지요. 나중에 그의 척박하고 외로웠던 삶을 알고는 시몬 그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마음에 두었던 여인이든, 평생 짝사랑했던 여인이던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낙엽이 지면 그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지니 말입니다. 구르몽의 ‘낙엽’에서 이어지는 수필은 학창 시절 국어책에 나왔던 이효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이지요. 그 시절 어린 나의 기억 속에 낙엽 태우는 냄새라는 후각의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던 그의 글의 한 부분...    


"...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 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Anything better than the smell of burning fallen leaves? It smells of fresh roasted coffee and a ripe hazel. With a rake in hand, I stand still in the smoke so long and watch the piles of leaves burning away. When I take a sweet smell at the burning leaves, I suddenly feel a fierce desire of life. The ordor of smoke permeates me and, all too soon, my clothes and hands smell of them. 

(From the essay ‘Burning Fallen Leaves’ by Lee, Hyo-seok)    


아직 보이지도 않는 낙엽이지만 가을의 냄새와 더불어 익숙한 시와 수필을 통해 가슴에 내려와 쌓입니다. 나명욱의 시는 떨어져 구르는 낙엽을 인생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젊은 날의 꿈과 사랑과 소망의 상실, 늙어가는 육신과 메말라가는 영혼, 세월 따라 사라져 가는 정든 사람들... 하지만 시인은 부서지는 낙엽을 통해 삶의 무상함을 깨닫지요.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놓아 보내고 자유로워집니다. 아마도 이제 망각의 눈 속에 덮일 겨울을 기다려야겠지요. 술 취하면 가끔 흥얼거리는 ‘고엽’(Autumn Leaves)의 피아노 선율이 귀를 간지럽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뿌린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