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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12. 2021

아! 내 마음속의 시인

서정윤 : 홀로 서기

홀로 서기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Standing alone

             Seo, Jeong-yoon


1.     

Waiting may not 

Be meant for 

Meeting.

If your heart be broken

Let it be as it is.

If the wind blows,

Give your far-off smile

With your head up. 

So many days I wandered 

Seeking for my another half somewhere. 

If I am destined to meet someone

From the birth,

Now I want to meet 

That one.      


2.    

Standing alone 

It is harder than 

Beating your breast in tears.

But my small breast,

Still hanging at the end of the rope

Tying myself,

Looks up at the sky 

Too far away 

Longing desperately for somebody.

But none 

Can fill my heart. 

And at last, 

When I found no other way but to live alone

I myself

Fell on the ground again.      


3          

I’d like to wipe away,

I’d like to remove 

This expressionless face. 

Anybody 

Doesn’t take care of my pain,

Only tries to push me down

Into a mire,

So deep a mire. 

But I have nothing in my hand.

So I have to smile 

And give up...

One day everything I held was at stake

And finally shattered to pieces,

I was turning

My empty back.     


‘홀로 서기’란 명사형 시어를 만들어 30여 년 전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시인 서정윤. 서른의 나이에 발표한 이 시는 원래 7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같은 제목의 시집은 1987년 출간 당시 300만 부 이상이 팔리며 시집으로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지요. 온화한 인상에 나와는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으니 이제는 육십 대 중반의 초로에 접어들었을 것입니다. 시를 쓰며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것은 당시 국문과 출신에게는 일상적인 과정이기도 했지요. 서른의 나이에 쓴 시 ‘홀로 서기’는 사랑에 대한 갈구와 외로움, 내면에 대한 성찰과 갈등, 그리고 운명처럼 지워진 ‘홀로 살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젊은 모두에게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왔던 그 시절의 홀로 서기. 하지만 세월이 그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50대 중반 그는 시인으로서, 스승으로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탈을 행하고 결국 그로 인해 그의 시심과 유려한 시체(詩體)는 꺾이고 맙니다. 아! 서정윤. 그는 동시대를 산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운 이름입니다. 시는 시인의 손을 벗어나는 순간 독자의 것이라고 했던가요. 부디 아직도 그에게 후회 많은 삶에 대한 더 깊어진 시심이 남아있기를,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라도 홀로 서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순수했던 그의 젊은 시절 시 한 조각을 다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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