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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Oct 20. 2021

무엇도 나무라지 않는 나무

이창훈 : 나무

나무 

     이창훈     


나무는 

나무를 베려던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나무가 

베인 핏물로 써 내려간 종이에     


사람들은 

희망이라 읽고 사랑이라고 쓴다    


내일도 바람에 

귀를 씻는 푸른 잎사귀    


나무는 

제 손을 갉아먹는 벌레를 나무라지 않는다    


못 뽑힌 자리 멍든 손 들어 

괜찮다 괜찮다... 十字架 흔들며 뿌리내린다    


나무 중지 송송 뚫린 구멍으로 

사람들은 높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A Tree 

     Lee, Chang-hoon     


A tree never blames

A man who tries to cut it off.      


On the paper 

Where a tree writes down in blood from its scars,    


People 

Read hope and write love.     


Tomorrow, too, will see 

The green leaves wash their ears in the wind.     


A tree never blames 

Worms for crunching on its hands.    


Raising its bruised hands where nails are pilled out

It says it’s all right, all right... shakes a cross and takes its roots.    


Through the holes bored in the fingers of a tree

People look up at the high sky.     


자신을 베려던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 나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지난 주일날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기독교인의 가장 본질적인 태도에 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죽음’이라는 명제로 시작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나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희생, 대속(代贖)의 고통에 대한 깨달음이며 낡고 추한 죄의 탈각(脫却)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 이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죠. 그리고 그분의 끝없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믿음이 부족한 제가 그 말씀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분명하게 남은 것은 나의 죽음이라는 절실한 명제였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베어짐으로써 새로운 삶을 얻게 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 절단의 고통 속에서 나무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정신을 알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인은 그 위대한 정신을 나무에게서 보았지요.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신 세상의 그릇된 비난과 모함의 말들을 씻어버리고, 심지어 제 손을 갉아먹는 벌레마저 나무라지 않는 나무의 묵묵함을 찬양합니다. 십자가의 고통마저 기꺼이 감수하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나무. 잘리고 먹혀 구멍 숭숭한 나무 아래서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또다시 희망과 사랑을 배웁니다. 그런 나무 같은 삶은 과연 가능할까요? 나를 죽여 예수와의 동행은 가능할까요? 작고 초라한 삶 속에서 그나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감격하는 이 보잘것없는 생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 위의 시는 브런치 작가이신 이창훈 시인이 2021년 10월 21일 자 브런치에 올린 '나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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