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역병

by 최용훈

셰익스피어는 전 생애에 걸쳐 흑사병의 그림자 속에 살았다. 1564년 4월 26일 그의 고향 스트래트포드 어펀 에이븐(Stratford-upon-Avon)에 있던 ‘성 삼위 교회’(Holy Trinity Church)의 사제는 교구 기록부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아기에게 세례를 주었음을 기록하였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 사제는 올리버 건(Oliver Gunne)이라는 청년의 죽음을 공지했는데 사망자 기록부 여백에 “ 흑사병이 시작되다”(hic incipit petis)라고 적어 넣고 있다. 이 흑사병의 전파로 마을 인구의 1/5이 사망한 가운데 신생아 셰익스피어는 다행스럽게도 역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역병은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았다. 엄격한 격리 조치와 기후의 변화로 역병은 서서히 사라졌고 일상은 회복되었다. 그러나 몇 년 뒤 다시 흑사병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전염된 사람들은 열이 나고 오한을 느꼈다. 극도로 몸이 약해져 설사와 구토를 하고 심한 경우에는 입에서 피를 흘리기도 하였다. 죽음이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개와 고양이를 도살하는 등 수많은 방역 조치가 취해졌으나 소용이 없었다. 흑사병은 쥐벼룩에 의해 퍼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말린 로즈메리 잎이나 풍로가 달린 냄비에 유향을 태우는 것이 공기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퍼졌다. 이것들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낡은 신발을 태우라는 것이 의사들의 권고였다. 사람들은 거리에 나설 때에는 정향(丁香) 나무 조각을 가득 채운 오렌지를 코에 대고 걸었는데 이는 오늘날 마스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감염률은 시골보다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더 높았다. 그래서 많은 도시인들이 시골을 찾았지만 그들에 의해 역병은 더욱 확산되었다. 당시의 관리들도 오늘날 ‘사회적 거리두기’라 불리는 조치들을 취했다. 교구 기록부를 이용해 그들은 매주 역병 관련 사망자들을 기록했다. 사망자 수가 30명이 넘으면 집회, 연회, 궁술 대회 등 다중이 모이는 행사들은 모두 금지되었다. 교회의 예배는 예외였다. 종교적 의식이 진행되는 중에는 역병의 감염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신 중심의 중세적 사상이 그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런던의 극장들은 모두 폐쇄되었다. 보통 매일 밤 극장마다 2000-3000 명의 관객들이 모이곤 했기 때문이었다. 몇 달씩 방역을 위해 극장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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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극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1582년, 1592-93년, 1603-1604년, 1606년, 1608-1609년 계속해서 역병이 발생한다. 특히 1606년에서 1610년 사이는 셰익스피어가 그의 주요 작품들---‘맥베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겨울 이야기, 폭풍’(Macbeth, Antony and Cleopatra, Winter’s Tale, Tempest)---을 썼던 시기였는데 같은 기간에 런던의 극장들이 문은 연 것은 불과 9달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시에는 역병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등장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은유적으로 묘사될 뿐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몽테규 가와 캐풀렛 가 사이의 싸움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머큐시오는 이렇게 외친다. “두 집안 모두에게 역병이 닥치기를.” “너는 종기 같은 놈이야.” ‘리어왕’에서 리어는 자신의 딸 고너릴에게 “역병의 상처, 도드라진 부스럼”이라고 말한다. ‘아테네의 타이몬’에서 타이몬은 아테네인들을 향해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혼돈이여 오라! 사람들에게 따라오는 역병이여/ 그대의 강한 열병을 퍼뜨려 썩어 문드러진/ 아테네인들을 뒤덮어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역병은 일상의 표현이었다. “도둑끼리 서로를 속이니 역병이나 받아라!”, “한숨과 슬픔의 역병!”, “절인 청어 같은 역병!” 등의 표현에서 보듯 역병은 공포의 조짐이라기보다는 친숙하고 피할 수 없는 일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현대 영어에서 “Plague take (it 〔him〕)!”이란 표현이 “염병할 것, 빌어먹을 (것, 놈), 제기랄” 등의 의미로 쓰이고 “What a 〔the〕 plague!”라고 하면 “도대체, 대관절, 어마.” 등의 뜻이 되는 것도 오랜 세월 동안 역병(plague)이라는 말의 의미가 언어 속에 녹아든 때문일 것이다.


역병은 희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베아트리체는 베네딕트가 클라우디오와 친하게 지낸다는 얘기를 듣자 그를 비난하며 이렇게 말한다. “맙소사. 베네딕트는 클라우디오를 역병처럼 전염시킬 거예요. 그는 걸리기는 쉽지만 고치기는 어려운 전염병이에요.... 일단 그에게 전염되면 미쳐버리고 만다니까요. 오 신 이시어, 클라우디오를 도우소서! 베네딕트에게 한 번 걸리면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게 될 거예요.” 또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역병이 표현되고 있다. ‘12 야’(The Twelfth Night)에서 올리비아는 남자로 변장한 비올라를 보고 즉시 사랑에 빠지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된 일이지? 어찌 그렇게 빨리 역병에 걸리고 말았는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역병을 실제의 사건으로 그린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부분이 유일하다. 줄리엣과 로렌스 신부가 줄리엣이 죽은 것으로 꾸미고, 그 사실을 만투아로 추방된 로미오에게 알리기 위해 다른 신부를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로미오를 만나지 못한다. 그 이유를 로렌스 신부에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나는 나와 함께 갈 우리 수도회의 수사를 만나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병자를 위로하는 중이었어요. 그와 만난 순간, 보건 당국의 관리들이 쳐들어와 우리가 역병에 감염된 집에 함께 있었다고 말했지요. 그들은 그 집을 격리하고, 문들을 폐쇄한 후 우리도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그곳에 갇혀 만투아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줄리엣의 소식을 듣지 못한 로미오는 아테네로 숨어들어 줄리엣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로미오는 줄리엣의 시신이 보관된 무덤 안으로 들어가 가짜로 죽은 줄리엣을 보고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은 것 같은 잠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자기 옆에 로미오가 독약을 마시고 쓰러진 것을 발견하자 극한의 슬픔 속에서 로미오의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삶 속에서 역병의 고통이 일상이 되었듯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도 그것은 친숙한 일상의 표현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였던 토마스 내쉬(Thomas Nashe)는 자신의 시 ‘역병의 시대에 드리는 기도’(A Litany in Time of Plague)에서 이렇게 역병을 묘사한다.


부자들이여, 그대들의 부를 믿지 말라

금으로도 그대의 건강은 살 수 없으니.

의술은 색이 바래고

모든 것은 종말을 위해 만들어질뿐.

역병이 휩쓸고 간다.

나는 병들고, 나는 죽을 수밖에.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내쉬의 시는 역병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와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누구든 죽음으로 이끌 뿐이다. 셰익스피어도 역병에 대한 내쉬의 비관주의를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의술에 비추어 그러한 비관주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맥베스, 햄릿, 오셀로, 리어왕’ 등에서 보듯 물리적 세계를 넘어선 또 다른 역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은 거짓되고, 부패하고, 무능력하며, 피에 젖은, 그래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파괴하고 마는 지도자에 의해 생겨나는 역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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