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오늘을 붙들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Horace)의 서정시집 ‘오데스’(Odes, 23 B.C.) 중에 나오는 금언(金言)의 일부이다: “오늘을 붙들라. 내일은 가능한 한 믿지 말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이 표현이 주는 교훈은 호라티우스 이전 이후의 많은 문학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문학, 특히 서정시에 자주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사후의 세계나 초자연적인 것들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라고 가르친다. 에피쿠로스 자신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죽음이 이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삶이란 ‘여기, 지금’ 존재하는 것이며 천국의 행복이나 지옥의 고통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고로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pleasure)이 우리가 달성해야 할 최고의 선이라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는 또한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내일을 통제할 힘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쾌락을 미루고 있다. 삶은 쾌락의 지연으로 파괴되며 우리 모두는 일에 깊이 빠진 채 죽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바꾸고 쾌락의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말한다. 시원한 물 한잔으로 꿀물 같은 만족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하며, 미래에 대한 높은 바람과 기대보다는 오늘의 즐거움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문학에서는 16세기와 17세기 시인들의 시에 카르페 디엠의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 소위 ‘왕당파 시인’(Cavalier poets)들은 잔치, 사냥, 자연 속에서의 사랑 등 세속적인 즐거움을 시의 주제로 삼고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 1591~1674)의 시집 ‘헤스페리데스’(Hesperides, 1648) 속에 포함된 “처녀들에게, 지금의 시간을 활용하는 것”(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라는 시에는 젊은 여성들에게 현재의 자유로움과 함께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권유한다.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송이를 모으세요.
옛 시간은 여전히 흐르니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이면 시들고 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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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피가 뜨거웠던
처음의 시절이 최고의 시절이니
그것을 놓치면 더 나쁜
최악의 시간이 뒤따를 뿐인 것을.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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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age is best which is the first,
When youth and blood are warmer;
But being spent, the worse, and worst
Times still succeed the former.
한편 형이상학파 시인(Metaphysical poet) 앤드루 마블(Andrew Marvel, 1621~1678)은 사후에 출판된 그의 시 ‘수줍은 연인에게‘(To His Coy Mistress, 1681)에서 여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애타는 마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에게 충분한 세상과 시간이 있다면
여인이여, 이 수줍음은 죄가 되지 않을 거요.
둘이 앉아서 어디로 걸어갈지,
어떻게 긴 사랑의 날을 보낼지를 생각하겠지요.
Had we but world enough, and time,
This coyness Lady were no crime.
We would sit down and think which way
To walk, and pass our long love's day.
하지만 시간은 짧고 세상은 유한하니 이 아까운 날들을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쉽지 않은가. 시인은 시의 후반에 이르러 속내를 드러낸다.
이제 할 수 있을 때 즐깁시다.
서서히 나약해지는 무력감에 빠지지 말고
마치 사랑에 굶주린 맹금(猛禽)처럼
우리의 시간을 즉시 먹어치웁시다.
Now let us sport us while we may;
And now, like amorous birds of prey,
Rather at once our time devour
Than languish in his slow-chapped power.
형이상학파 시인들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이미지를 대비해 시적 효과를 높이는 ‘형이상학적 기상’(metaphysical conceit)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위의 시에서는 사랑에 대한 구애를 사나운 새들의 교미에 비교하는 기이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존 던(John Donne)의 형이상학적 시 ‘벼룩’(The Flea)에서도 여인과의 육체적 사랑을 원하는 시 안의 화자는 두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벼룩 속의 피를 얘기하며 두 사람의 결합을 강조한다. 두 시의 공통점은 그러한 기상(奇想)을 통해 현재의 쾌락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로 카르페 디엠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세기 초반부터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용어가 가깝게 다가온 것은 1989년 제작된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영화 속 고등학교 문학 교사인 키팅 선생은 학생들과 위에 언급한 로버트 헤릭의 시를 읽으며 그들에게 현재의 젊음, 시간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미국의 계관 시인이라 불렸던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도 ‘카르페 디엠’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현재의 즐거움을 강조한다. 시 속에서 ‘세월’(Age)이라는 화자는 두 아이에게 이렇게 외친다.
“행복, 행복, 행복해라.
그리고 오늘의 즐거움을 붙들어라. “
"Be happy, happy, happy,
And seize the day of pleasure."
흔히 행복은 삶의 목적인 것으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행복은 성공과는 다르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성공하기로 선택한다 해서 성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하기로 마음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행복은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화로운 상태’를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은 순간에 있다. 지금 이 순간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일 것이다. 아이의 티 없는 웃음소리, 태양빛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 귀에 익은 부드러운 노랫소리... 그 작은 모든 것에서 지금 이 순간 평화로울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카르페 디엠, 지금, 여기서 즐거워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