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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9. 2021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 것

김혜순 : 지평선 

지평선

             김혜순


누가 쪼개 놓았나

저 지평선

하늘과 땅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로 핏물이 번져 나오는 저녁


누가 쪼개 놓았나

윗눈꺼풀과 아랫눈꺼풀 사이

바깥의 광활과 안의 광활로 내 몸이 갈라진 흔적

그 사이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저녁


상처만이 상처와 서로 스밀 수 있는가

두 눈을 뜨자 닥쳐오는 저 노을

상처와 상처가 맞닿아

하염없이 붉은 물이 흐르고

당신이란 이름의 비상구도 깜깜하게 닫히네


누가 쪼개 놓았나

흰 낮과 검은 밤

낮이면 그녀는 매가 되고

밤이 오면 그가 늑대가 되는

그 사이로 칼날처럼 스쳐 지나는

우리 만남의 저녁


The Horizon 

          Kim, Hye-soon 


Who split it?

That horizon.

The trace of separating the sky from the earth.

The evening when the blood spread out between them.  


Who split it? 

The upper eyelid and the lower one.

The trace of my body breaking up into outer and inner vastness. 

The evening when tears rise up between them.


Can only scars soak in other scars? 

The evening glow rushing in to my open eyes. 

From the scars overlapped by other ones

Red water endlessly flows,

When the emergency exit named ‘You’ is closed. 


Who split it? 

White day and black night.

During the daytime she becomes a hawk

And at night he turns to a wolf.

Between them we sweep by like a blade

On the evening of our meeting. 


세상은 두 개의 마주하고 갈라지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하늘과 땅이 그렇고, 위, 아래 눈꺼풀이 그렇고, 밤과 낮이 그렇죠. 어디 그것뿐인가요? 바다와 육지, 강과 숲, 남과 여, 사랑과 미움, 만남과 이별... 수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에 의해 갈라지고 또 만나곤 합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 상처에 상처가 덧붙여지면 핏물 같은 눈물이 흐릅니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했던 문이 닫히면 우린 갈라진 두 길에 홀로 남겨지겠지요. 하늘과 땅이 갈라지듯, 나의 육신이 안과 밖으로 갈라지듯, 낮과 밤으로 인해 당신과 나의 모습이 변하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이 저 아래 두 길이 면하는 곳에서 무한처럼 펼쳐집니다.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과 지평선, 그 끝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면 다른 것은 무엇일까요, 그저 모든 것은 하나가 되겠지요. 날카롭게 스쳐가 눈물이 되고 핏물이 되던 그 황홀한 저녁에 우린 다시 만날 겁니다. 그리고 또다시 갈라지는 두 길을 만날 때까지 걸어가겠죠. 그때까진 당신이 나의 비상구가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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