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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4. 2021

12월의 시인

류시화 : 눈 위에 쓰는 시 

눈 위에 쓰는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A Poem I Am Writing on the Snow

                             Shiva Ryu  


They say;

Some write poems on paper

Others write poems in the minds of people


The others write poems 

In the traceless air. 


But I write poems

on the December snow.


My poems 

That will disappear with no vestige.  


우린 누구나 시를 씁니다. 흰 종이 위에, 가슴에, 허공에 시를 씁니다. 내 슬픔, 고독, 절망. 나의 기쁨, 설렘, 희망을 씁니다. 아 가련한 시인들! 그 어떤 것조차 자국을 남기지 못할 지나치는 감정들. 그것을 잡아보려, 남겨두려, 애쓰는 우리 모두는 가련한 시인들입니다. 그리고 12월의 어느 날, 엘리엇이 말한 ‘망각의 눈’ 위에 허한 마음으로 또다시 시를 씁니다. 눈 녹으면 흔적 없이 사라질 나의 시, 나의 젊음, 나의 생명이여!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언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축 늘어진 뿌리를 

봄비로 뒤흔드는. 

겨울이 따뜻했지.

망각의 눈으로 땅을 덮고,

마른 뿌리로 하찮은 미물들을 먹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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