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에 있어서 중산계층의 대두는 기존의 사회구조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했다. 고대 사회는 귀족과 평민 그리고 노예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노예는 귀족의 소유물에 불과했으므로 결국 사회구조는 귀족과 평민 즉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물류의 유통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구조가 형성되었고, 그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상인계급이었다. 그들은 피지배계급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상업을 통해 개인적인 부를 축척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새로운 세력이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중산층을 이루게 된다. 이들은 혈통에 의해 귀족의 지위를 누릴 수는 없었지만 막대한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그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사에서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은 18세기 전반에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귀족들의 생득적인 취향을 따라갈 수 없음을 깨닫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이념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들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시장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상업 행위를 주장하였다. 중산층의 이러한 경제관을 반영한 것이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원제 :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1776)이다. 그는 국가에 의한 시장의 간섭을 비난하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는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가능한 한 배제하려는 경제사상 및 정책을 가리키는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적으로 체계화시켰던 것이다.
중산계층의 이러한 자유주의적 사상은 18세기의 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5세기 캑스턴(Caxton)이 인쇄술을 도입한 후 출판업이 번창함으로써 문학은 귀족들의 손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 그중에서도 중산층의 기호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특히 여성 독자층의 확대로 이어지게 되는데, 교육의 확대로 인해 여성들도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적 여유로 구매력이 증대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여성 취향의 ‘소설’ 장르가 급속도로 확산된다. 18세기 전반을 ‘소설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18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
문학과 상업주의가 결합되어 ‘그럽 스트리트’(Grub Street)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전업 작가 군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들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다. 19세기까지 존재했던 런던의 거리 ‘그럽 스트리트’는 가난한 시인, 소설가들의 집합소였다. 글을 써서 어려운 생활을 영위하던 작가들이 이곳에 모여 그들만의 동질성을 확인하곤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발전한 것이 ‘커피 하우스’(coffee house)였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의 곤궁한 작가들이 명동의 찻집들로 모였던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또한 각종 잡지나 문예지들이 발행되었는데 ‘태틀러’(The Tatler)나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와 같은 잡지들은 저널리즘으로서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18세기 전반은 일반적으로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로 대표되는 영국의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시대라 불린다. 급속한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신고전주의 정신이 강화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질서와 균형, 규칙과 규범을 강조하는 고전주의가 상업의 발달과 중산층에 의해 주도된 새로운 문화적 현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전반 청교도 혁명의 종교적 열광에서 벗어나 18세기는 이성과 절제의 미덕을 강조하게 되었고, 명예혁명(1688-1689)에 따른 정치체제의 변화, 그리고 아이작 뉴턴(Issac Newton, 1643~1727)의 합리적 보편주의 등의 배경 아래서 문학계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범(典範)을 따르고자 하는 신고전주의의 정신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정치적 측면에서는 중산층에 의해 형성된 감상주의와 상업주의에 대한 문학적 반발이 질서와 규범의 고전주의적 원칙을 고수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중산층의 감상에 맞춘 ‘소설’ 장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영국 소설로 간주되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6~1761)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1719),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의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 1726) 등이 영국뿐 아니라 유럽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중산층 여성 독자들의 취향에 맞춘 감상적 소설들도 등장한다.
그중 대표적인 작가가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61)이다. 작가이며 동시에 인쇄업자였던 그는 세 편의 편지 형식 ‘서간체 소설’(epistolary novel)로 잘 알려져 있으나 평생 500 편 이상의 문학 작품을 인쇄한 인쇄업자였다. 자신의 사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었던 그는 인쇄업을 그만두고 51세의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의 첫 소설 ‘파멜라’(Pamela, 1740)에서는 순수하고 정직한 여 주인공(파멜라)이 등장한다. 소설의 부제 ‘보상받은 미덕’(Virtue Rewarded)에서 보듯 그녀는 하층 계급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선한 품성과 미덕으로 마침내 귀족 집안의 청년과 결혼한다. 여성의 심리 묘사에 뛰어났던 리처드슨의 소설에서는 여주인공들의 순결, 결혼, 신분 등 당시의 중산층 여성 독자의 관심사를 주로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러한 여성적 주제들은 이후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1813)의 저자인 여류 소설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로 이어진다.
리처드슨의 다른 작품 ‘클라리사’(Clarissa, 1748)는 딸의 결혼을 이용해 사회적 지위를 확대하려는 부모와 딸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클라리사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비극적 소설은 영어로 쓴 가장 긴 소설들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찰스 그랜디슨’(Sir Charles Grandison)은 남성 주인공의 이름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데, 여성의 미덕과 대비되는 남성의 미덕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리처드슨의 동시대 작가 헨리 필딩(Henry Fielding, 1707~1754)의 ‘버려진 아이 탐 존스’(Tom Jones, a Foundling, 1749)는 남성 주인공의 모험과 삶을 그린 작품으로 주로 악당이나 하층 계급 아이들을 소재로 한 까닭에 ‘악당 소설’(picaresque novel)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18세기 소설들은 주로 중산 계층의 정서나 태도를 반영하고 있었다. 현실에 입각해 삶을 그려내고 있으며 인간의 미묘한 심리에 대해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또한 소설의 주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던 여성들의 문제와 그들의 관심사를 주로 다루고 있다.
18세기 전반은 영문학사에서 소설 문학이 등장한 시절이었다. 이 시절의 문학은 신고전주의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중산 계층 나름의 문화를 강력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설의 테마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의 사실주의 작품에 까지 이어져 영국 소설의 한 특징을 형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