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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09. 2022

다시 첫 눈처럼 내리기를

이창훈 : 문 앞에서, -열쇠

문 앞에서

   -열쇠

          이창훈


모두가 잠들어가는,

모처럼 기분 좋게 달렸지만


피곤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새벽


이영훈의 옛사랑을 흥얼거리며

돌아오는 길


문 앞에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른다


식은땀을 흘리며 자꾸만

익숙한 몸의 구서구석을 더듬어도

너무나 익숙하다고 믿었던


네가 없다 결코 내 곁을

떠나지 못할 거라 믿었던


네가 없다 가만히 웅크린 채

평온한 등불을 켜고 나를 기다리는

저 안의 세계처럼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뒤돌아보지 않고 저 어두운 생의 손잡이를

열고 닫아줄 거라고만 생각했던


네가, 네 작은 몸이 없다

텅 빈 벽처럼 문 앞에 서서


공포에 떠는 이

깊은 밤


At the door

     -A Key

             Lee, Chang-hoon


While all were falling asleep,

I just finished jogging cheerfully.


At dawn

When fatigue weighed heavily on my mind,


I was on my way back home,

Humming Lee Young-hoon’s ‘Old Love.’


At the door

I was at a loss what to do.


Breaking into a cold sweat,

I repeatedly groped all over my body.

But you, whom I believed to be always close to me,


Were not anywhere.

You, whom I believed would never leave me


Were found nowhere.

Like the world inside, waiting for me,

Lighting a soft lantern, and in a crouch,


You, whom I believed, whenever necessary,

Would turn the knob of my dark life

Without hesitation,


And your little body were not here with me.

Standing at the door like an empty wall,


I was trembling in fear

Deep in the night.


“나의 그리움을 끝없이 증언하는 당신의 부재! 오! 부재함으로써 늘 다가오는 당신이 다시 첫눈처럼 내리기를·····”  


브런치 작가이기도 한 이창훈 시인의 2011년 시집 ‘문 앞에서’의 첫 두 페이지에 인쇄된 이 시를 읽는 순간, 한 조각의 아린 감정이 솟아오름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시집에 써진 시인의 말, ‘부재’의 공허함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죠. 수없는 만남과 헤어짐, 기억과 망각의 거미줄 같은 세상살이가 왜 이리 힘들고 아플까 하는 의문도 바로 그 ‘부재’의 결과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내 곁에 없는 것들... 늘 내 곁에 있으리라는 그 짧은 믿음이 언제 사라졌는지도 떠올리지 못하는 세월의 잔인함, 손을 뻗으면 그 여린 따뜻함이 전해질 것 같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하는 추억의 아픔. 하지만 그대가 주머니 속 열쇠처럼 어둔 삶의 손잡이를 돌려줄 것이라는 그 소중했던 기다림과 믿음을 떠올리게 해주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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