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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an 27. 2022

노을 속의 산책

안신영 : 노을 지는 길목에서

노을 지는 길목에서

                  안신영


해 질 녘

누군가 부르지 않아도

서성이는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서걱대는 마른풀들의 노래에

귀 기울여 바라보다

붉게 떨어지는 노을과 인사한다.


그대와 내가

오늘도 무사히 넘긴 하루

고요히 머물다 간 마음자리에

미련을 떨구어 낼 것처럼

점점이 스며들 저녁


저녁 빛이 감미로운

강물엔 다정히

고갯짓, 날갯짓으로

동무들과 물결치는 오리들이 반긴다.


저무는 저녁놀 따라

한없이 밀려가는 마음 자락

그대가 오래 머물러도 좋은데

소식 없는 세월만큼

뒷모습도 아스라이 멀다.


봄날처럼 훈훈한 바람

겨울을 밀어내려나

귓가에 다정히 속삭이듯

드높이 보이는 까치집


추운 겨울 이겨내면

진초록 우거진 숲 속에

하늘 높이 노래할

그날을 기다려.


꽃피는 날 머지않아

훈풍에 어깨 펴고 당당히

마음껏 나래 펼 수 있다고

꿋꿋이 말하는 것 같다.


In a Street Corner Aglow with the Setting Sun

                                 Ahn, Shin-young


At twilight

I walk out the door in a wandering mind

Without being called by anyone.


Listening to the songs of crisp, dried grasses,

I watch them and greet the red sun

Sinking down.


Today

You and I spent safely,

Evening permeates softly

Into the place of my mind, silently staying and passing

As if to sweep away some regrets.


In a river

Sweetly dyed with the evening glow

Ducks, swimming together, greet me

by nodding and fluttering.


Along the evening glow

My mind endlessly drifts.

You might have stayed longer,

But the sight of your back is

As remote as the years gone by.


The wind warm like a spring day

May drive out winter.

A nest of a magpie, whispering to me,

Is seen high in the air.  


Weathering the cold winter

I will wait for the day in a deep green forest

When I will sing

High up to the sky.


Before long flowers will bloom.

Opening our shoulders in the breeze,

We can say firmly

We can fly high.  


저녁놀이 질 무렵 집을 나서는 시 속의 화자는 마른풀 소리를 들으며 지는 해에게 인사합니다. 보낸 세월만큼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발걸음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음속을 파고드는 저녁의 고요함이 한 구석에 자리한 미련과 후회를 밀어냅니다. 물 위를 떠도는 오리들을 벗 삼고, 아스라이 멀어진 세월 속의 누군가를 잠시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겨울을 잊게 하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공중에 매달린 까치집에서 정겨운 새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하늘 높이 두 팔을 벌리고 노래할 날이 오겠지요. 평안함 속에 새로운 희망이 살아납니다. 그렇게 겨울의 짧은 저녁 산책은 아름다운 노을 안에서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 위의 영문은 브런치 작가이신 안신영 시인의 1월 27일 자 시 ‘노을 지는 길목에서’를 영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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