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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19. 2022

움직일 수 없다

Emily Bronte : Spellbound

Spellbound

         by Emily Brontë


The night is darkening round me,

The wild winds coldly blow;

But a tyrant bird spell has bound me

And I cannot, cannot go.

The giant trees are bending

Their bare boughs weighed with snow.

And the storm is fast descending,

And yet I cannot go.

Clouds beyond clouds above me,

Wastes beyond wastes below;

But nothing drear can move me;

I will not, cannot go.


주문에 걸리다

          에밀리 브론테


내 주위로 밤이 더욱 짙어간다.

거친 바람이 차갑게 불어온다.

나는 한 마리 딱새의 주문(呪文)에 사로잡혀

갈 수 없다, 갈 수 없다.

거대한 나무들의 메마른 가지들이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구부러진다.

폭풍이 빠르게 하강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갈 수 없다.

머리 위 구름 건너 구름,

발아래 황무지 건너 황무지

하지만 황량한 어떤 것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나는 가지 않겠다, 갈 수 없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저자인 영국의 여류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시입니다. 한 겨울의 어느 순간, 어둠은 짙고,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옵니다. 눈에 덮인 나뭇가지들은 꺾어질 듯 늘어지고 폭풍우가 다가옵니다. 어서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 속의 화자는 한 마리 딱새의 주문에 사로잡혀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 천국(구름)과 지옥(황무지) 사이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갈 수도 없지만 가지도 않겠다 합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변의 모든 것이 위험하기 짝이 없건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마치 마법에 사로잡힌 듯 제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이죠. 이제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길 뿐, 섣부른 의지로 움직이려 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렇게 삶은 어쩔 수 없는 주문에 걸려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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