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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22. 2022

세월은 바닥을 비추는 볕입니다

권덕하 : 볕 

        권덕하 


물속 바닥까지 볕이 든 날 있다

가던 물고기 멈추고 제 그림자 보는 날

하산 길 섬돌에 앉은 그대 등허리도

반쯤 물든 나뭇잎 같아

신발 끄는 소리에 볕 드는 날

물속 가지 휘어 놓고

나를 들여다보는

저 고요의 눈


One day the sun shines into the bottom of water. 

Swimming fish stop and see their own shadows.

Your back, when you sit on a rock on your way back down,

Looks like a half-dyed leaf. 

So, the day when the sun shines with the sound of shoes dragged,

I put the bending boughs in water

And watch myself 

With silent eyes. 


고요 속에서만 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날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잊고 살았는지요.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 안에 나 자신은 없었습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거울에 얼굴을 비쳐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이켜보니 조그맣게 남겨진 등허리 휜, 탈색된 누군가의 모습을 봅니다. 제 그림자에 놀란 물고기처럼 나뭇가지 드리어놓고 물에 비춘 나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무엇에도 굴절되지 않은 고요한 눈빛으로 말입니다. 세월은 그렇듯 바닥까지 비추는 햇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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