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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02. 2022

8월에 자란 보리

셰이무스 히니 : 단발 당원을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the Croppies

                 by Seamus Heaney


The pockets of our greatcoats full of barley...

No kitchens on the run, no striking camp...

We moved quick and sudden in our own country.

The priest lay behind ditches with the tramp.

A people hardly marching... on the hike...

We found new tactics happening each day:

We'd cut through reins and rider with the pike

And stampede cattle into infantry,

Then retreat through hedges where cavalry must be thrown.

Until... on Vinegar Hill... the final conclave.

Terraced thousands died, shaking scythes at cannon.

The hillside blushed, soaked in our broken wave.

They buried us without shroud or coffin

And in August... the barley grew up out of our grave.


단발 당원(短髮黨員)을 위한 진혼곡

                      셰이머스 히니


보리로 가득 찬 우리의 방한 외투 주머니...

급히 이동 중 취사할 곳도, 습격할 적의 야영지도 없다...

우리는 우리 땅 안에서 서둘러 황망히 이동했다.

그 목사는 도랑 뒤에 짓밟힌 채 누워있었지.

단 한 명도 행군하지 못했어... 그저 걸어갈 뿐이었으니까...

매일 새로운 전술을 써보았다.

쇠꼬챙이로 말의 고삐와 기마병을 찔러대고

가축들을 적의 보병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다가

기마병들이 몰려들 것이 뻔한 산울타리로 후퇴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마지막 자리... 비네거 힐까지.

오합지졸 같았던 수천 명이 대포 앞에서 낫을 휘두르다가 죽음을 당했다.

언덕은 붉게 물들고 우리의 깨어진 파도 속에 흠뻑 젖었지.

그들은 수의도 관도 없이 우리를 묻었고

8월이 되면... 우리의 무덤 위로 보리가 자랐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 1939~2013)가 이 시를 쓴 것은 1962년이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압제 하에 있었던 조국 아일랜드의 민중들이 1798년에 일으킨 봉기를 소네트 형식의 시 14줄에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 인들은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전쟁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의 제목 ‘단발 당원’이란 전투에 임하며 영국군과의 구별을 위해 머리를 짧게 잘랐던 혁명군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강대국 영국에 대항할 제대로 된 무기도 외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지요. 주머니 속에 보리알을 넣고 다니며 식량을 대신했습니다. 굶주림 속의 전투가 얼마나 무모하고 고통스러웠는지요. 방한 외투 한 벌을 걸치고 그들은 추운 겨울의 전쟁터를 걸어야 했습니다. 들고 있던 꼬챙이와 낫을 들고 그들은 총을 든 기마병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전장(戰場) 비네거 힐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깨어진 파도와 같던 아일랜드의 민중군들의 피가 전쟁터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들이 묻힌 그곳에서는 8월이면 보리가 자라났습니다.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생존하지 못했다... 왼쪽에 앉은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이다. (Evgeniy Maloletka /AP)

전쟁은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자 수치입니다. 역사 속에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살육이 용인되고 미화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70여 년 전 이 땅에서는 동족끼리 서로를 죽이고 죽는 비극적인 참화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위기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멀리 유럽의 변방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러시아의 탱크와 중무장한 병사들이 그 유서 깊은 땅을 침략하고 우크라이나의 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거대한 폭력에 맞서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을 전쟁터로 떠내 보내는 아이와 아내의 울음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합니다. 어린 소녀의 죽음에 세계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의 주머니엔 무엇이 들었을까요? 이름 없는 무덤 위에 보리가 자란들, 꽃이 핀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것은 그저 인간의 잔인함과 무도함에 대한 무의미한 저항일 뿐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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