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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04. 2022

세월이 약이겠지요

갈웨이 킨넬 : 기다리세요

기다리세요

           갈웨이 킨넬


지금은 기다려요.

그래야 한다면 모든 것을 믿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시간은 믿으세요. 그것이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곳으로 당신을 데려다주지 않았나요?

개인적인 일들이 다시 흥미로워질 거예요.

머리카락도 흥미로워지고

고통도 흥미로워지고,

계절을 뚫고 솟아난 봉오리들도 흥미로워질 겁니다.

낡은 장갑도 다시 사랑스러워질 거고요.

그것에 얽힌 추억 때문에

다른 이의 손길에 맡겨지긴 하겠지요.

연인들의 쓸쓸함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와 같이 작은 존재들로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공허함은

마침내 충족되어질 겁니다.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다면 옛사랑에 충실해야죠. 


기다리세요.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당신도 피곤하겠지만, 모두가 피곤해요.

하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사람은 없지요.

그저 잠시 기다리고 귀 기울이세요.

머리카락의 음악

고통의 음악,

우리의 사랑들을 다시 짜는 베틀의 음악을.

그곳에 서서 그것을 들으세요. 그 시간이

슬픔으로 되풀이되고 결국 스스로 소진(消盡)되어

무엇보다도 당신의 존재 전체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될 거에요.


Wait

     by Galway Kinnel

 

Wait, for now.
Distrust everything if you have to.
But trust the hours. Haven’t they
carried you everywhere, up to now?
Personal events will become interesting again.
Hair will become interesting.
Pain will become interesting.
Buds that open out of season will become interesting.
Second-hand gloves will become lovely again;
their memories are what give them
the need for other hands. The desolation
of lovers is the same: that enormous emptiness
carved out of such tiny beings as we are
asks to be filled; the need
for the new love is faithfulness to the old.


Wait.
Don’t go too early.
You’re tired. But everyone’s tired.
But no one is tired enough.
Only wait a little and listen:
music of hair,
music of pain,
music of looms weaving our loves again.
Be there to hear it, it will be the only time,
most of all to hear your whole existence,
rehearsed by the sorrows, play itself into total exhaustion.


이 시는 퓰리처 상 수상자인 미국 시인 갈웨이 킨넬(Galway Kinnel)이 1980년에 출판한 시집 ‘도덕적 행위, 도덕적 말’(Moral Acts, Moral Words)에 수록된 것입니다. 대화체의 이 시는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인내 그리고 삶의 갱생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는 킨넬이 교수로 있던 대학의 여학생이 연인과 헤어지고 난 뒤 자신을 찾아와 고통과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것을 듣고 쓴 것이라 합니다.


시 속의 화자는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기다리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 외에는 그 무엇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마음의 상처는 사라지고 삶의 크고 작은 것들---머리카락, 고통, 그리고 꽃봉오리---모두 다시 흥미로워질 것이니까요. 잃어버린 사랑 뒤의 공허함은 마치 새 주인을 만난 장갑처럼 다시 채워질 것이고 아름다워질 거라 말합니다. 삶이 피곤한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끝내고 가버릴 수는 없지요. 기다리고 버티세요. 작고 큰 삶의 모든 것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귀 기울이세요. 그 음악 속에 슬픔이 되풀이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끝나고 나면 삶의 음악 전부를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시 속의 ‘소진’이란 시어는 삶의 소진이 아니라 절망과 슬픔의 소진일 뿐입니다.


카뮈는 한 때 “삶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 지를 결정하는 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은 철학을 넘어서서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사람이나 그 반대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도 고통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맙니다. 살만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과 선택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죠. 억만장자가 누군가에게 배신당해 재산을 절반쯤 잃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게 무슨 대수? 그는 아직도 부자잖아!’라고 생각하겠지만, 배신당한 그 사람에게는 죽음을 택할 만큼 괴로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끝날 때까지 버텨야만 그것이 들려주는 모든 연주를 듣고 삶의 가치와 진실을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기다리세요. 시간이 주는 새로운 변화와 사랑의 회복을 믿으세요. 삶의 연주가 절로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그저 기다리세요. 모든 것이 새로이 흥미로워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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