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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11. 2022

아버지의 가면

김현승 :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1913-1975)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英雄)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Father’s Mind

           Kim, Hyun-seung 


Busy men,

Strong men,

Men like passing winds,

Coming home, they all become fathers 


Who, for children,

Make a fire in a stove,

Drive a tiny nail in a swing,


Close the door against the wind,

Gather fallen leaves. 


In a noisy world,

Fathers, like the sparrows on an electric wire,

Worry about the future of their children.

Who are fathers’ country, their brethren. 


Tears are hardly seen in their eyes,

But their wine cups 

Are half full of unseen tears.

Fathers are the loneliest men

Though they can be heroes.   


Men who make bombs,

Men who guard prisoners,

Men who shut the doors of the bars,


Coming back home, they become fathers,

Whose dirts are washed away

By the clean blood of their children. 


아버지가 된 사내들은 모두 가면을 써야 합니다. 생존을 위한 싸움터의 비굴함과 분노 따위는 하회탈처럼 찡그려 웃는 가면으로 대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소리를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창문에 비닐을 씌우고, 휴일에는 고장 난 아이들의 장난감과 낡은 울타리를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아이들은 어찌 살아야 하나. 그들의 춥고 아픈 삶이 이유 없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에 그저 고개를 떨굽니다. ‘살아야지. 힘들어도 버텨야지’를 수없이 되뇌며 집으로 향합니다. 바깥의 거친 삶 속에서 더 거칠어져야 하는 사내들은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아버지가 됩니다. 아이들의 맑은 얼굴 앞에서 자신의 추하고, 악한 삶의 그림자를 지워야 합니다. 가면을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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