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 대나무꽃
대나무꽃
이은희
좋은 일이 있을 거랬다
사는 동안 한 번도 못 보고 가는 이도 있다더라
특별히 햇살이 따사로운 것도 아니고
바람이 간지럽지도 않았던
그저 스산한 느낌이 들어서 서럽던 날
마음을 비우고 싶었고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했던
위로해줄 이를 찾던 가을 저녁
모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멘트에
또로록 슬픔 한 방울
평생을 비우는데 공들였을 네게서
평생을 채우고파 공들였던 우리는
죽음과 맞바꾼 행운을 잡는다
Bamboo Flowers
Lee, Eun-hee
They said that something good would happen
And that there is someone who has never seen it in life.
On a sorrowful day
When the sunshine was not nice warm,
The wind never tickled me,
And I felt dreary and lonesome;
On an autumn evening
When I wished to empty my mind,
And I was looking for someone
Who would comfort me,
What I heard from the radio
Made me softly shed a drop of sorrow.
From you, who has striven all life to make yourself empty,
We, who have struggled to make ourselves filled in lifetime,
Grab a golden chance in exchange for death.
대나무가 평생 한 번 꽃을 피우듯 우리의 삶은 무엇을 피울 수 있을까요? 햇빛도 바람도 기쁨이 되지 못한 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위로를 찾던 그 가을의 저녁은 왜 그리 허전했을까요. 비우고 채워도 어쩌지 못한 마음을 다잡고 걸어가는 길은 왜 그리 허황했는지. 그 무거운 발걸음 끝에 대나무에 핀 꽃을 보았습니다.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다는 그 꽃을 행운처럼 만났습니다. 평생 제 속을 비워내느라 힘들었던 대나무의 죽음과 맞바꾼 마지막 사랑입니다.
* 위의 영문은 이은희 시인이 4월 5일에 브런치에 올린 ‘대나무꽃’을 영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