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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06. 2022

제 몸을 태우는 일

윤동주 : 초 한 대

초 한대

         윤동주 


초 한대 -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려 버린다.


그리고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A Candle

        by Yoon, Dong-joo


A candle -

I smell the fragrance spread in my room. 


Before the altar of the bright light collapsed,

I saw the clear offering:


His body like the ribs of a goat,

And his wick, his life. 


Shedding tears and blood like white jade

It burns itself. 


And shimmering on the desk

It dances like angels.


Like a pheasant chased by a hawk

Darkness runs away through the window.

And I smell the great fragrance of the offering

That permeates my room.  


촛불은 제 몸을 태워 주변을 밝힙니다. 마치 어둠을 몰아내는 제단 위의 제물처럼 하얀 촛농의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온 몸을 불사릅니다. 그 불꽃은 아름다운 무희들처럼 비틀어 춤을 추고, 어둠은 매에 쫓긴 꿩처럼 달아납니다. 사그라진 촛불의 잔향이 방 안에 가득합니다. 그런 촛불처럼 살고 싶습니다. 사람을 위해 빛을 밝히고, 기꺼이 자신을 제물로 바쳐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촛불의 삶을 닮고 싶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태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귀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그 잔향(殘香)마저 위대함을 알게 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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