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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pr 30. 2022

시간과 함께 동행하는 것들

이은희 : 너와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너와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이은희


나를 훔쳐보는 너는 꽉 찬 바람을 담고 있었어. 멀리 낮게 깔린 회색 차양에 가려 가끔 너는 나를 볼 수 없었지. 하지만 난 또렷이 느껴. 네가 다시 나를 보고 있을 거 란걸. 점점 너는 쇠약해갈 테지. 시간에 야금야금 먹혀가는 너는 언젠간 실눈을 뜨고 날 볼 수밖에 없어. 어느 순간, 아무리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한 대도 볼 수 없는 순간은 꼭 올 거야. 하지만 잠시간의 이별이야. 그렇게 너와 나의 시간이 흘러가겠지. 또 너는 금세 욕심을 부려가며 나를 다시 훔쳐볼 테지. 아무리 두꺼운 까만 커튼에 가려도 너의 시선은 절대 날 떠나지 않아. 다시 꽉 찬 바람을 담고 날 바라볼 테지. 시간을 먹고 너는 시나브로 그렇게 차오를 테지.


Your Time Flows with Mine

                      Lee, Eun-hee


You were full of desires when you stole a look at me. Sometimes you failed to see me veiled by a distant, low-lying grey awning. But I keenly feel that you are still watching me again. Perhaps you are gradually going to bits. Eaten by time bit by bit, you will, one day, have no other way than to look at me with your eyes half-closed. The moment will surely come when you will not be able to see me no matter how earnestly you wish to do so. But it will be a temporary parting. Thus, your and my time will flow away. Now, you must be watching me again with avarice. Even if hidden by a thick curtain, I shall never escape from your eyes. Filled with desires one more time, you will be watching me. Eating up time, you will be slowly but surely swelling by degrees.


시간의 흐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더불어 사는 많은 사람들, 손때 묻은 물건들,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산과 들과 바다와 강. 그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시간의 흐름에 동행하는 것이죠. 그 흐름 속에 조금씩 변해가고, 멀어지고,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시 속의 ‘너’는 사람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자연일 수도 있지요. 더 나아간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욕망처럼 떼 낼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하긴 나와 더불어 시간을, 세월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때론 더욱 사랑스럽고, 가끔 안쓰럽기도 한 모든 것들. 내가 그들을 바라보듯 그들도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요. 그렇게 우리는 시간 속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시인은 살짝 함께 하는 그것에 대해 힌트를 줍니다. ‘너’를 ‘달’로 바꾸어보라고. 그러면 모든 표현은 선명해지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라도 좋을 테니까요. 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윌리엄 블레이크의 짧은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 시심 속에서 자유로이 만들어낼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으니까요.


병든 장미

    윌리엄 블레이크


오 장미, 그대는 병들었도다

보이지 않는 벌레가

으르렁 거리는 폭풍우 속을

밤 동안 날아


진홍빛 환희에 물든

그대의 침상을 찾아내고

그 어둡고 은밀한 사랑으로

그대의 삶을 파괴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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