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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18. 2022

가면 다시 오지 말아라

류근 : 폭설

폭설

       류근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 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 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Heavy Snow

         Ryu, Keun


Snow falls

As if to erase the road where you left.

All night long snow falls like my curses

As if to cover up the road where you may return.  


With no traces of coming and going

You have been blotted out in deep snow.

With white blood gathering on every drifting step

Even the memory flickers like the distant light.

All the roads toward me are closed.  

To my plugged ears comes like the sound of a bell  

A leaf of premonition of parting,

The blue eyelids that can never been seen for the rest of my life.

On the tomb built while I’m living,

On my name,

Oh no, snow falls in pain,

Snow falls like my repressed penitence.

Snow falls

As if to erase the road where you left.

Wet snow, with its eyes closed, falls for a few days on end

To cover up the road where you may return.  


‘가면 다시 오지 말아라.’ 떠나는 사람의 걸음 위로 눈이 내립니다. 떠나가는 길을 덮어버린 그 눈이 다시 돌아올 길마저 지워버리길 바랍니다. 그것은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흔적 없이 사라진 그 길, 그 사람. 이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말았습니다. 영원한 이별의 예감은 귀를 막아도 종소리처럼 여전히 귓전에 울리는군요. 이제는 그의 마음에서 사라진 나, 내 이름 위로 눈이 내립니다. 떠나는 그 길, 돌아올 그 길에 망각의 하얀 눈이 내립니다. 슬픔에 잔뜩 젖은 채 폭설처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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