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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또는 '트루먼 쇼'

by 유무하

나는 가끔 보이지 않는 카메라가 나를 계속 찍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아나운서 '이금희'씨가 내 마음을 내레이션을 한다.


"그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한바탕 울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울음을 참아낸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하지만 그를 귀찮게 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는 오래간만에 크게 웃는다. 하지만 곧 무표정으로 변한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후회했다. 자신의 마음을 어린아이처럼 너무 드러내 놓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끔 속상한 일이 생기거나, 기분이 다운될 때

혼자서 '인간극장' 놀이를 한다.


물론 나는 그냥 심심해서 하는 놀이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의 마음은 꼭 읽어줘야 할 때가 있다.

그냥 알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듯하다.

문장으로 만들어서 읽어줘야 한다.

세상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맘속에 담아놓아 굳어버린 슬픔들을 읽어줘야 한다.


'이금희'씨 목소리처럼 또박또박.



나는 또 내레이터가 되기도 한다.

기억이 50년 전으로 돌아가 멈추어버린 노모의 마음과 행동을 대신 읽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매일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들의 안부를 아들에게 묻는다. 모두 돌아가셨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는 말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인다."


"그녀는 어릴 적 다니던 직장 동료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내 놓는다.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인지,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그녀는 아들이 항상 배고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종일 아들 먹일 음식들을 찾는다. 하루에 수십 번 냉장고 문을 열고, 전기밥솥을 열었다 닫는다."



살아가는 일은 분명 슬픈 일임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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