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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4. 2024

신의 고백(21화)

크리스와 헤어진 후 도형은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도형은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도형은 아내가 깨어날 수도 있다는 소리에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도형은 아내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재임을 통해 전해 듣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보며 이야기하는 아내의 다정한 소리가 너무도 듣고 싶었다.     

 단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도형의 아내는 특별기로 미국으로 옮겨지고 수십 명의 미국 최고 의료진들이 달라붙어 그녀 치료에 매달렸다.

그사이 재임은 또 새로운 거처로 옮겨졌다. 


전보다 훨씬 현대적인 건물에 호화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곳이었다.

도형은 린제이와 함께 재임의 새로운 거처로 찾아갔다.

도형은 한참을 망설이고 또 망설인 후 크리스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모두 사실대로 재임에게 이야기했다.     


“놀랍네요. 진짜 인간은 포기를 모르는 존재군요. 신과 싸우려 하다니.”

재임과 함께 그 이야기를 들은 린제이가 먼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이 사실대로 다 이야기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재임은 고맙다는 표정으로 도형을 보았다.     


“당연하지. 내가 어떻게 너를 속일 수 있겠어. 

이 모든 것을 같이 시작했는데. 희주 씨도 우리와 이제 한배를 탔어요.” 

도형은 린제이를 보며 말했다.     


“좋아요. 그 배에 같이 타서 기뻐요. 뭐든 같이 가보죠.”

린제이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희주 씨.”

도형은 린제이의 말이 진심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재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형은 재임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아 입술이 떨렸다.     


“특별히 네가 할 일은 없어. 그냥 신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면 되는 거야. 나도 그런 약속을 해버린 것을 많이 후회했어. 

아내를 깨어나게 해 준다는 말을 듣고 난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어. 

너에게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너도 신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 나와 계약을 한 크리스도 내가 신에 대하여 모든 것을 다 알아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알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신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신의 속성을 다 알려드릴게요. 지금은 뭐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이 서지 않네요. 

지금 내게는 선생님이 젤 중요하니까요. 

정확한 정보이든 아니든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정리해볼게요. 

또 앞으로의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선생님 사모님이 깨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해야죠.

부인은 잘 떠나셨어요? ”

재임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점점 믿어지지 않아. 내 곁에서 아내가 사라져 가는 것을 멍하게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어. 도대체 이 일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도형은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잘했어요. 도형 씨에게는 부인이 깨어나는 일이 최우선이에요.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아요. ” 린제이가 도형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이도형 씨와 저도 이곳에서 지내게 될 거예요. 부인 걱정은 하지 말아요. 

미국이 도형 씨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 아마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예요. 

이제 우리 셋이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대처해야 할 거예요. 

우리는 서로 믿어야 해요. 특히 저를요. ” 

린제이는 농담처럼 말했다.          


세상의 혼란은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었다. 

아니 시간은 거꾸로 돌아가는 듯했다. 

노동자들은 사라지고, 대부분 공장의 기계는 멈추어 버렸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지들은 일 년 만에 모두 폐허로 변해 버렸고 식량은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시장경제는 의미가 사라졌다. 

아니 자본주의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호모 사피엔스의 삶은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재임이 선포한 신의 경고를 믿지 않고 무시하던 사람들도 이젠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었다. 

돈의 가치가 사라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본성도 조금씩 변해갔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었다.

재임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새로운 신을 믿는 종교는 무섭게 번성했고, 그 새로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모든 재산과 식량을 서로 나누고 공유했다.     

매일 수만 명의 사람이 재임이 있는 한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항공기를 이용할 수 없는 대부분 사람은 선박을 이용하여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국 정부는 이들 모두를 막아 낼 여력을 잃고 말았다.

한국의 대부분 영토는 이들의 임시 거주지로 변했고, 서울에서는 수십만 명이 같은 장소에 모여 그들의 메시아인 서재임을 만나게 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거대한 사막 한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그들은 생명을 담보로 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였고, 공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그곳으로 가는 차량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얻은 사람들은 큰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 후 자신들만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 생각에 들떠 있었다.   


       

도형의 아내는 미국으로 떠난 지 3개월이 넘도록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도형은 아내를 혼자 보낸 것을 다시 한번 후회했다.     

“내 곁에 두어야 했는데....”     

크리스 리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도형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도형이 타고 있는 차는 크리스가 기다리고 있는 비밀 장소에 도착했다.

도형은 크리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흥분한 사람처럼 말했다.     


“한 달이면 가능하다고 약속했잖아요.” 

도형은 소리치듯 크리스에게 말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아내를 다시 돌려보내 주세요.”

도형은 크리스에게 항의하듯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은 어렵습니다. 곧 수술에 들어갈 것 같아요.”


‘수술’이라는 소리를 듣고 도형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수술을 해야 한다구요?”     


“이제 조금만 기다리시면 부인은 깨어나실 수 있습니다.”     


“한 달이라고 약속하셨잖아요. 한 달이라고 약속하셨잖아요.”

도형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크리스는 미안하다는 듯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가봐야겠어요. 뇌 수술이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도형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멀리까지 혼자 보냈는데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도형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위험한 수술이 아니에요.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어요. 절대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

크리스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네요. 그렇게 혼자 보내서는 안 되었는데.”     


“일단 좀 앉으세요. ”

크리스가 지쳤다는 듯이 먼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요. 제가 좀 흥분했나 봐요. 죄송합니다. 하여간 내가 아내 곁으로 가든지, 아니면 아내를 데리고 와야겠어요. 이 상태로는 제가 너무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한 달만 더 시간을 주세요. 도형 씨 부인 담당 의사들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깨어날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곁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은 아는데, 도형 씨는 여기서 할 일이 있잖아요. 

우선 서재임에게 얻은 정보부터 알려주세요. 우리에게도 시간이 부족해요.”

도형은 그동안 재임에게서 들은 신의 속성에 대하여 크리스에게 모두 말했다.     


크리스는 노트북을 꺼내 도형이 하는 말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우리는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신의 정보가 필요해요. 좀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좀 더 노력 해 보겠습니다.”

도형은 더 이상 신의 정보를 가져올 자신이 없었지만, 크리스에게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형은 크리스 옆에 앉아 물 한 잔을 모두 비웠다.     


“계속 한국에 머물고 계시는 건가요?”

도형은 크리스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아니요.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저도 한국에 이모님이 계시거든요. 저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구요. 그분이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혈육이에요. 하지만 그분도 도형 씨 부인처럼 의식이 없지만...”

크리스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도형은 갑자기 아내 곁에 누워있던 교수가 생각났다.     


“혹시 이모님 성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도형이 뜬금없이 물었다.     


“왜 갑자기 이모님 이름을...”

 크리스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최순옥 씨는 아니시죠?”

크리스의 표정이 변하였다.     


“어떻게 우리 이모님의 이름을...”

도형은 크리스의 표정을 보고 더 크게 놀랐다.     


“이모님이 최순옥 씨가 맞아요? 시립대에서 교수하고 계셨던?”

순간 도형의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내의 옆자리에 늘 누워있던 여자. 

유일한 혈육은 미국에 있는 조카. 서재임이 텔레파시를 통해 알아낸 사실들.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고 말했던 교수의 아들.      

그가 지금 도형의 앞에 서 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군요.”

도형은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는 아직도 도형이 어떤 이유로 자신의 유일한 혈육 이름을 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형은 모든 이야기를 크리스에게 자세하게 말했다. 크리스는 교수의 조카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죽기 전에 반드시 보아야 한다고 서재임을 통해서 말했다고.     

모든 사실을 다 듣고 크리스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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