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무하 Oct 24. 2024

신의 고백(23화)

도형은 재임에게 크리스 리와 만나 한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전해주었다.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많이 일어나는군요.”     


“맞아. 정말 놀랐어. 생각 같아서는 너에게 데리고 와서 누워계신 크리스 어머니의 소리를 전달해 주고 싶기는 했어. 너무 안쓰럽더라고.”     

그 순간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은 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린제이의 노크 소리란 것 알았다.     

재임의 대답을 듣고 린제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왔다.     


“뭔 일 났어요?”     

도형이 린제이의 표정을 보고 물었다.     


린제이는 대답 없이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린 후 말했다.     


“서재임 씨를 보려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몰려들고 있어요. 

재임 씨를 만나게 해달라는 시위도 점점 거세지고 있고요.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큰일 나겠어요. 정부도 지금은 속수무책이에요. 

그렇다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할 입장도 아니고. 뭔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요. 재임 씨가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재임이를 보호하려고 지금 이렇게 격리해 놓은 거 아닌가요?”

도형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보호해야죠. 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의미가 없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곧 모든 사람이 다 죽을 텐데 누굴 보호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물론 재임 씨는 지금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서 두 분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나를 메시아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냥 두면 곧 세상은 끝나버릴 텐데.”

재임은 관심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미국이 신과 싸운다고 했잖아요. 신을 이길 가능성이 있을까요?”

갑자기 린제이가 도형에게 물었다.     


“희주 씨는 미국이 신을 없애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도형은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그냥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린제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당장 내일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오늘 해야 할 일은 해야죠.”

린제이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데요? 방송에 나오는 것보다 더 심각한가요?” 

도형이 린제이에게 물었다.     


“ 저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심각한 상태이긴 해요.

사람들이 그냥 자기들 맘대로 행동하고 있어요. 

어떤 곳에서는 신의 뜻대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삶을 마무리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폭력과 살인, 자살, 강간, 폭동으로 이미 종말을 고한 곳도 있고, 우리나라는 재임 씨를 보려고 새로운 종교의 광신도들이 몰려오고 있잖아요. 

그들로 인해 나라가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정부는 어느 정도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광신도들이 무슨 일은 벌일지 몰라 경찰도 군인도 지금 대기 상태에요.”     


“ 새로운 종교는 뭘 믿는 거죠? 재임이 말 한 신을 믿는 거예요, 아님 서재임을 믿는 거예요?”

도형이 린제이에게 물었다.     


“ 저도 잘은 모르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는거죠. 재임 씨나 재임 씨가 말 한 신을 열심히 믿으면 자신들은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 그건 말이 안 되는데요? 신은 우리 모두의 영혼을 가지고 또 다른 우주로 떠나 버리겠다는 건데...”

재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는 거지.”

도형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 재임이 TV에라도 나가서 그들에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도형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 신의 뜻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거죠. 서재임이나 신을 믿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건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2년도 채 안 남았으니 그냥 그동안 서로 행복하게 살다가 신과 하나가 되자, 뭐 이런 식으로요.”     


“ 그들은 재임 씨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해요. 그들이 매일 모여서 시위하는 곳에 이미 재임 씨 자리까지 만들어 두었어요.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재임 씨를 그곳으로 모시고 오라는 거예요.”

도형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재임에게 말했다.     

“너 교주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이런 상황이면 우리나라도 곧 폐허가 돼버릴 거야. 네가 나가서 그들을 좀 진정시키는 게 어때?”     


“방송을 하라구요?” 재임이 물었다.     


“아니, 직접 나가야 효과가 있지 않을까? 

희주 씨 말대로 지금 누구를 보호하고 말고는 의미가 없어. 

지금 우리 모두 다 벼랑 앞에 서 있는 거야. 

스스로 뛰어내리든지 뒷사람에게 밀려 떨어지던지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신이 준 기한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네가 나가서 그들을 해산시켜 봐. 

아니면 진짜 교주가 되어서 그들을 인도하던지.”     


재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후 재임이 입을 열었다.     


“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꼭 해야 하는 일인가요?”

재임은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그럼 할 수 있지” 


“그럼 할 수 있죠.”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나도 이제 아내가 미국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려고.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난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가 깨어나는 상상과 기대를 했어. 

병실을 나왔다 들어갈 때마다 기대했고,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내가 깨어있다는 상상을 했어. 매일 매일 일어나지 않을 일을 기대하고 산다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더라고. 

그러니 재임아, 너도 죽기 전에 뭔가 하고 죽자. 

그냥 이런 곳에 갇혀서 살다 죽는 건 너무 허망하잖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자신이 없어요.”     

“ 전에 미국 검증단이 왔을 때 보니 엄청 잘 하더구만. 잘 할 수 있을 거야.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너의 옆에 같이 있어 줄게.”     


“ 그때는 신이 하는 말을 그냥 전한 거고요. 지금은 다르잖아요.”

재임은 주저했다.     


“ 도와주세요. 재임 씨”

린제이가 재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재임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아직도 재임이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도형이 린제이에게 물었다.     


“ 전보다 줄어들기는 했겠지만, 아직 남아있긴 하겠죠. 우리가 최대한 경호에 신경 써볼게요.”     

“ 재임 씨, 제가 준비해도 될까요?”

린제이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재임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좀 더 생각해 보실래요?”

 린제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냥 하라는 대로 할게요. 뭔가 판단이 서지 않아요. 그냥 이 선생님이나, 린제이가 하자는 대로 할게요. 이 선생님 말씀대로 여기 너무 오랫동안 격리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나도 죽기 전에 뭐든 해야죠.”    

 

“ 그래, 죽든 살든 세상으로 나가보자.” 도형이 재임을 보며 말했다.

린제이의 말에 따라 광화문 광장에 수천 명의 경찰과 군인이 재임의 경호를 위하여 배치되었다.     


광화문 광장에 광신도들이 메시아의 자리라고 만들어 놓은 초라한 무대는 모두 철거되고, 사방 어디에서든 재임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새로운 무대가 높은 위치에 만들어졌다. 

사방과 천정까지 모두 방탄유리를 이중으로 둘렀다.

재임이 사람들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미리 공개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전국에 흩어져 있던 광신도들은 서울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오전 10시 30분 도형과 린제이, 그리고 재임은 검은색 승용차에 타고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미리 짜놓은 루트대로 재임은 무대를 향해 뛰어갔다.

유리 상자처럼 만들어진 무대에 재임이 들어갔다.

재임의 모습을 본 군중들은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재임은 마이크 앞에 서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여러분...”


재임의 말을 듣기 위해 광장은 고요해졌다.     

재임을 걱정스레 보고 있던 린제이와 도형이 순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재임이 다음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군중들 사이로 군인 복장을 한 수십 명의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다.

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경찰들은 당황했지만, 그들 역시 재임을 경호하기 위해 준비된 병력이라 생각하였다.     

순간 군인 복장의 사람 중 한 명이 재임이 서 있는 무대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하였다.     

총알은 이중으로 된 유리 벽 하나를 뚫고 안쪽 유리에 맞고 떨어졌다. 

이어 다른 이들 모두 총을 재임에게 겨누었다.     

재임은 꼼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순간 총을 겨누고 있던 군인 복장의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져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린제이와 도형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신이 오셨다. 신이 재임을 지켜주셨어.” 

도형은 신음을 내듯 말했다.     


이 모습을 본 군중들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