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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5. 2024

신의 고백(24화)

광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재임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재임은 TV 방송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신의 뜻을 전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라고 강조했다.      

재임은 마치 진짜 메시아가 된 듯했다.     

우리나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일부의 광신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들은 재임의 뜻대로, 아니 신의 뜻대로 남은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도형은 아내가 미국으로 떠난 후 수면제를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다. 

매일 밤, 잠 못 이룰 때 머릿속에 떠오르던 고통스러운 잡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면제는 도형에게 생생하고, 끔찍한 악몽을 선사하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고 달려오고, 이들을 피해 절벽으로 올라가 발을 잘못 디뎌 끝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도형은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도형은 자신의 추락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하지만 새벽에 걸려 온 전화의 불길함이 도형의 온몸에 스며들었다.     

창문 밖이 아직 어두운 것을 보고 아침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도형은 알 수 있었다.

도형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휴대전화에는 외국에서 걸려 오는 전화라고 표시되었다.  

   

“여보세요?”

도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도형 씨. 크리스입니다. 그곳은 아직 새벽이죠? 죄송합니다.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부인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도형은 자신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아내가 깨어나는 꿈을 수도 없이 꾸었기 때문이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면서 말했다.     


“네? 아내가 깨어났다고요?”     


“네. 한 시간 전에 의식이 회복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크리스도 흥분한 말투였다.     


도형은 순간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 지금 회복 중이니 곧 전화 통화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 네. 애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형은 간신히 인사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형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험을 했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오는 경험.     


아내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웃는 모습을 보고, 힘껏 안아 볼 수 있다는 기쁨과 이 모든 것이 일 년이면 다 끝나버린다는 허무함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도형의 지워진 소설 첫 페이지 묘사처럼, 도형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내가 돌아오기로 한 이틀 내내 도형은 수면제의 힘을 빌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내가 도형의 곁으로 돌아올 때까지 깨어서 기다리는 초조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형의 아내가 우리나라로 오기로 한 날 아침 도형은 크리스의 전화를 받았다.     


“ 크리스입니다.”

크리스의 목소리는 전과 달리 가라앉아 있었다.     


“ 도착하셨나요? 서울대학병원으로 오신다고 했죠?”

도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문제가 좀 있습니다. 부인께서는 아직 미국에 계십니다. 

오늘 저만 한국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저녁에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크리스의 말에 도형은 흥분했다.     


“ 문제라니요.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도형은 자기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께서는 잘 회복하고 계십니다. 단지...”

크리스는 말을 흐렸다.     

도형은 아내가 회복 중이라는 말에 긴 한숨을 쉬었다.     


“ 제발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제 아내만 괜찮으면 전 상관없습니다. 그럼, 언제 올 수 있을까요?”

“ 제가 오늘 한국에 들어가자마자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인께서는 좋아지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요. 

한 시간 후쯤 부인과 전화 통화를 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도형은 불안했다. 평생을 따라다니던 불안이 모두 모인 것만큼 도형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후 도형은 미국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 도형 씨?”

전화를 받자마자 아내의 목소리라는 것을, 도형을 알 수 있었다.


“ 어, 김이지 당신이야?”

도형은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물었다.


도형은 얼마 만에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인지 생각하려 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 당신 덕분에 나 살았어. 그동안 고생 많았지? 난 괜찮아요. 이제 곧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어요. 여기 의사분들이 날 살리기 위해서 엄청나게 고생하셨다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내는 울먹이며 말했다.     


“그래? 정말 다행이다. 당신 혼자 그곳에 보내서 미안해. 당신 깨어날 때 내가 옆에 있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 맘 편하게 쉬고 있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뭐 불편한 건 없고?”   

  

“ 없어요. 마치 내가 높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 사람들이 날 대하고 있어요. 

부담스러운 정도로.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 그래? 다행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맘 편하게 있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 알았어요. 곧 만나요.”     

도형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을 다 모두 다 쏟아내었다.     

빨리 크리스를 만나서 아내가 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이 연기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날 자정이 넘어 도형은 크리스를 만났다.     

크리스는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미안한 표정으로 도형을 보았다.     


“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

도형은 애써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 죄송합니다. 부인께서 깨어나는 대로 모시고 오려 했는데.”

크리스는 이마에 손을 올리며 계속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아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면 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 신과 싸울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습니다.”     

크리스의 말투와 표정은 비장했다.     

“ 벌써요? 계속하세요.”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게요. ”

크리스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 네. 말씀하세요.”     

“ 혹시 CERN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크리스가 갑자기 비밀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말소리를 줄였다.     


“ 네. 들어보긴 했죠. 유럽에 있는 입자가속기 연구소 말씀하시는 것이죠?”     


“ 네 맞아요. 그곳에 수천의 과학자들이 다 모여있어요. 그 장치를 기본으로 이용해서 신을 죽이는 장치를 만들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장치들이 그 입자가속기에 추가로 건설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작은 블랙홀 같은 것을 만들어 신을 없애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플랜 A, B, C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 작은 블랙홀이요?”

도형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 네. 그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신을 그곳에 어떻게 들어가게 만드느냐 에요. 그곳은 거대한 파이프나 터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 그런 걸 만들면 지구도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요? 저는 문과생이라 전혀 모르지만….”     


“ 지금 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있을 수 없죠. 물론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고, 잘못하면 지구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지만, 지금으로는 신과 싸울 방법이 그 장치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에요.”     


“ 그곳으로 신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신이 스스로 들어가지 않는 한 말이에요.” 

도형은 고개를 저었다.     


“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 선생님과 서재임 씨가 도와주셔야죠.     

우리는 신이 계속 서재임 씨 곁에 있다고 가정하고 있거든요.”     


“ 그건 모르죠. 혹시 서재임을 그 거대한 파이프 속에 신과 같이 넣겠다는 말씀인가요?”

도형은 스스로 말하고도 자기 말에 놀랐다.     

“인류를 위해서라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크리스의 말투는 전쟁터의 장군처럼 힘이 있었다.     

도형은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 서재임 씨가 저희의 계획은 알고 계시죠?”

크리스가 물었다.     

“ 네, 제가 이야기는 했지만, 그 사람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도형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 이도형 씨가 서재임 씨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할 때 신이 다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신도 알지 못하게 신을 죽일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는 것 자체가 원래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도형은 고개를 들고 크리스의 눈을 보며 말했다.     

“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진행하려고 합니다. 신이 서재임과 같은 곳에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 성공 가능성도 거의 없는 일에 서재임을 그렇게 희생시킬 수는 없어요.”

재임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계속 저으며 말했다.     


“ 미국에서는 이도형 씨가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순간 도형의 크리스 말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 내가 서재임을 그 터널인지 파이프인지 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할 때까지 아내를 미국에 잡아 놓을 생각이군요.”

크리스는 자신이 하기 어려운 말을 도형이 스스로 먼저 꺼내주어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 사실 아내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냥 신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뜻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렵게 아내가 깨어났는데, 또다시 세상의 종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요. 아내와 더 오랫동안 같이 살고 싶은 맘이 간절해졌어요. 신을 원망하고 당신들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다짐도 했지만, 서재임을 먼저 희생시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네요.”     

“ 마지막에 서재임 씨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지금은 인류를 구할 사람은 서재임 한 사람밖에 없어요.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불확실한 시기에요. 서재임 씨를 그곳에 갈 수 있도록 설득할 사람은 이도형 씨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 생각이고요.”     

도형은 재임을 배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때까지 아내를 볼모로 잡고 있겠다는 거군요.”

도형은 스스로 판단 할 수 없었다.     


“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도와주십시오.”

크리스의 말은 간절했다.     


“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도형은 힘없이 말했다.     


“ 시간이 별로 없어요.”     

“ 네. 빨리 결정해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도형은 숙소로 돌아온 후 수면제 몇 알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잠에서 깨어난 도형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깨어났는지, 자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가지씩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도형의 팔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 정말 미치겠다.”     

도형은 큰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도형은 엄청난 중압감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도형은 린제이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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