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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5. 2024

신의 고백(25화)

“ 희주 씨도 이미 알고 계셨어요?”

도형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미국은 아직도 서재임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난리예요.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워하고 있어요. 조금이라고 잘못되면 관련된 사람이 다 죽어버릴 테니까요.

서재임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신이잖아요.”     


“ 나에게 서재임을 스스로 미국이 준비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설득하라고 하는데, 저는 차마 얘기를 못 꺼내겠어요.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걸라는 거잖아요. 재임이 나를 많이 신뢰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를 배신하겠어요. 그렇게는 못 하죠.”

도형은 고개를 저었다.     


“ 부인을 생각하셔야죠. 그냥 선택은 재임 씨에게 맡기세요. 재임 씨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세요.”    

 

“ 그것은 더 잔인한 일이죠. 어떤 선택을 하던 얼마나 괴롭겠어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서재임 씨가 미국에서 원하는 대로, 그곳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뭐든 결정하셔야 해요. 미국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요. 지금은 이성적으로,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미국이 도형 씨 부인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몰라요. 우선 재임 씨에게 상황을 이야기해 보세요.”     


“ 미국을 믿을 수 없어요. 진짜로 재임이 탈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는지도 의심스러워요. 신은 이미 크리스의 계획을, 아니 미국의 계획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냥 의미 없는 일이에요.”    

 

“ 제 생각은 도형 씨도 자신만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하네요.”

린제이는 도형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형은 재임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였고, 재임은 미국의 뜻대로 유럽으로 가겠다고 선뜻 결정했다.     

     

“ 저 원래 오래전에 죽을 사람이었잖아요. 이 선생님 때문에 지금 살아있는 거예요. 미국의 뜻대로 신이 저와 그곳으로 들어갈 확률은 매우 적을 거예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하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하세요. 제가 그곳으로 가겠다고 했으니, 부인을 빨리 선생님 곁으로 모셔 오라고 하세요.”    

      

도형은 재임이 너무 빨리 결정해서 놀랐고, 또 생각이 다시 바뀔까 봐 걱정했다.     


“ 재임아. 미안하다.”

도형은 재임의 손을 잡았다.     


“ 제가 그곳에서 신을 부르고, 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확인하겠다는 거죠?”

재임은 담담하게 말했다.     

재임과 도형은 다시는 못 볼 사람들처럼 서로를 안아주었다.     



재임은 제네바 근교 스위스-프랑스 국경지대로 옮겨졌다.          

그곳은 마치 미래의 도시를 연상하게 했다.     


거대한 파이프들이 빌딩처럼 수백 개 솟아있고 거대한 기계장치의 소음은 천둥소리와 같았다.     

재임은 미군의 안내를 받아 수백 명의 과학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연구실로 들어갔다.   

  

“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크리스 리라고 합니다.”

크리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손을 내밀었다.     


재임은 크리스의 손을 가볍게 잡으며, 동시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크리스는 재임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작은 책자를 조용히 건네주었다.     

책자에는 재임이 해야 할 행동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크리스는 책자를 건넨 후 재임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본 후 다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재임은 크리스 눈빛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재임은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 안내되어 휴게실처럼 보이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곳에서 책자를 정독하시면 됩니다. 2시간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한국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책자에는 재임이 이제부터 해야 할 행동이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2시간이 지난 후 재임이 들어간 곳은 천장 높이가 10m 정도 되는 곳이었고, 그의 앞으로 서너 갈래로 이어진 터널은 그보다 2, 3m 더 낮게 되어있었다.     


재임은 그곳에 혼자 남겨졌다.      

재임은 다리에 힘이 빠진 것을 느꼈다. 

다리뿐 아니라, 온몸에 힘이 빠졌다.      

재임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재임이 신을 부를 위치가 정해졌고, 재임은 그곳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잠깐 열리는 바닥에 있는 문을 통해 탈출해야 한다.     

재임은 여러 번의 연습을 거쳤지만, 한 번도 시간 내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재임은 삶을 포기했다. 고시원 옥상 난간 위를 올라갔을 때처럼.     

재임은 자신이 숲속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재임이 지금 바라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신에게로 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끝없는 우주를 헤매고 다니는 자신의 영혼을 상상하였다.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이런 상태라면 신을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재임이 들어간 거대한 기계장치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곳은 이제 완전히 밀폐되었다.     


재임이 신을 불러 신의 음성을 확인한 후, 신호음이 울리면 재임이 서 있던 곳에서 1m 정도 앞에 있는 가로세로 50제곱센티미터 되는 작은 구명이 열렸을 때 그곳으로 재빠르게 뛰어들어야 한다.      

구멍이 열려있는 시간은 1초에 불과했다.     

수십 번 연습한다고 해도 탈출에 성공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재임이 그곳으로 뛰어드는 순간 모든 터널은 진공상태로 바뀌고 신은 그 속에 갇히게 된다. 재임이 그 작은 공간으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계획대로 작동되어 재임의 몸은 진공 속에서 터져버릴 것이다.     

재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았다.     

10분 정도 지난 후에 재임은 신의 음성을 들었다.     


재임은 미리 약속한 대로, 신이 왔다는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살짝 올렸다.     

순간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리고 재임이 앉아있던 자리에서 1m 정도 앞에 작은 구멍이 열렸다.     

재임은 자신도 모르게 재빠르게 일어나 그 구멍 속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재임 머리 위의 문은 닫혀버리고 거대한 기계장치는 큰 소음을 내며 작동되기 시작하였다.     

재임이 빠져나오고 난 후 24시간 동안 준비된 모든 장치가 작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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