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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무하 Oct 25. 2024

신의 고백(27화)

재임이 극적으로 거대한 기계장치에서 빠져나온 뒤, 재임은 또다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다.     

미국은 자기들의 성공을 자신했다.     


세상 사람들은 신이 인류의 종말을 예고한 날을 초조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재임이 신에게 들었던 말처럼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만 사망하였다.     

세계 곳곳에서는 신과 싸워 이긴 날을 기념하여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도형의 아내는 한국으로 돌아와 건강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3년간 이어진 세상의 혼란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각 나라 정부는 강력한 치안 정책을 마련하고, 예전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크리스는 자신의 생모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 도형의 아내를 치료한 팀에게 맡겨졌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였다.     

크리스는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었다.     

도형과 재임이 린제이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 두 분이 인류를 살리셨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린제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재임은 쑥스러운 듯 작은 미소를 지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직도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정말 신이 죽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구요.”     

재임은 신이 죽음을 원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 정말 긴 악몽을 꾼 것 같아요.” 도형이 린제이를 보며 말했다.

도형은 아내가 사고가 나던 날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머릿속을 흘러갔다.  

   

“ 빠른 속도로 예전의 질서를 찾아가고 있어요. 인류 모두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옛사람들이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던 말이 뭔지 아세요?”


린제이는 두 사람에게 묻고 스스로 답을 하였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 

죽음의 목전까지 갔던 인류는 이제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겠죠?”   

  

“ 그랬으면 좋겠네요. 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도형이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   

  

“ 재임아, 우리 여행 좀 다녀올까?”

도형이 재임에게 물었다.     


“ 우리도 아름다운 경치 좀 보면서 마음의 정리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린제이가 웃으며 물었다.     


“ 저도 좋아요.”

재임이 두통이 온 것처럼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 왜? 머리 아파?”

도형이 걱정스러운 듯이 재임에게 물었다.     


“ 아니요.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너무 약하게 들려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겠어요. ”

도형과 린제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 신의 소리예요? 신이 아직 살아있는 건가?”

린제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 잘 모르겠어요. 좀 다르긴 한데.”

 순간 재임은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았다.     


“ 재임아?”

도형이 재임을 일으키려고 손을 잡았다.     


재임은 도형의 팔을 뿌리치고 누구와 대화하는 자세를 취했다.     

린제이와 도형은 숨을 죽이고 도형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재임이 천천히 눈을 떴다.     


“ 누구야? 신이 살아 있는 거지?” 도형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재임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 교수님이요. 크리스 씨의 어머니.”


“ 그분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너와 대화할 수 있지?”

재임은 뭔가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인간들이 정말 큰 일을 벌인 것 같네요.”

재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뭐라고요? 자세히 말해보세요.” 린제이가 재촉하듯 말했다.     


“ 인간이 지옥문을 열었어요.”     


“ 도대체 무슨 소리야? ”

 도형이 흥분해서 말했다.     


“ 교수님의 영혼이 깊은 곳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해요. 떨어지면서 느껴지는 고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하다네요. 거의 비명과 같은 말로 나에게 말했어요. 신이 없는 영혼은 고통 속에서 영원히 떠돌아야 하나 봐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확실한 거야? 정신 좀 똑바로 차려봐.”

도형은 재임의 양쪽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 교수님이 죽었는데 어떻게 널 찾아왔어? 그건 말이 안 되잖아.”     


“ 전에 나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서, 계속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는군.” 린제이는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이제 인간들은 죽으면 모두 지옥 불에 떨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죽은 영혼이 갈 곳이 없으니.”     


“확신한 거예요?” 린제이가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죽어갈 텐데. 세상에 이일을 또 알려야 하나?”

도형은 재임에게 물었다.     

재임은 대답할 수 없을 만큼 지쳐있었다.     


“더 큰 일이 벌어졌네요.” 린제이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도형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도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 무슨 일이에요?”     

린제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 아내가 다시 쓰러졌대요. 지금 병원 응급실이라고 하네요.”     


“ 지금은 누구도 죽어서는 안 돼요.


지금 죽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라고요.”     

재임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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