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은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뛰어갔다.
도형은 심장이 뛰었다.
겁이 났다.
아내를 다시 잃을까 겁이 났고, 아내가 죽은 후에도 고통 속에서 헤맬까 봐 겁이 났다.
도형은 응급실에 들어가는 짧은 순간에도 재임을 만난 것을 후회했다.
재임의 죽음을 보고 침묵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고시원에 찾아간 것도 후회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지옥문을 열어버린 것은 바로 나야.’
도형은 심하게 자책했다.
한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던 그가, 온 인류를 지옥 불에 몰아넣은 것이다.
도형은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형은 누워있는 아내를 보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아내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다시 이런 모습을 볼 것이라고는 도형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가 의식을 또 잃은 것인지, 잠을 자는 것인지 도형은 구분할 수 없었다.
도형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
순간 도형의 아내는 눈을 떴다.
“도형 씨 왔어요? 미안해요. 갑자기 어지럽더니 정신을 잠깐 잃었었나 봐요. 많이 놀랐지? 걱정하지 마요. 지금은 괜찮아요.”
도형은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감을 느꼈다.
도형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 정말 다행이다. 지금은 절대 죽으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죽으면 안 돼. 알았지?”
도형은 아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 뭔 소리예요? 죽긴 왜 죽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오래오래 살 테니까.”
도형의 아내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았어. 좀 더 자.”
도형의 말은 듣고 아내는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응급실 밖에는 재임과 린제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좀 더 검사를 해봐야 하긴 하는데, 지금 뭐 위험하거나 그런 상황은 아닌가 봐.”
도형은 걱정하고 있는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 정말 놀랐어요. 진짜 다행이다.” 린제이가 말을 이었다.
"이젠 어떡하죠? 저는 계속 몸에 소름이 돋아나요.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재임씨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모두 지옥에 떨어져 버린다는 거잖아요. 그것도 영원히."
린제이는 울먹거렸다.
"인간들에게 이 사실을 절대로 알려서는 안 돼요."
도형은 비장한 말투로 말했다.
" 말은 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동안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린제이가 무너져 버린듯했다.
" 신을 다시 살려내야지요. 지금 지옥문을 닫아줄 분은 신밖에 없어요.
정말로 신이 죽었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그냥 재임이 신과 접속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재임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크리스 어머니의 비명은요?"
린제이는 계속 울먹이고 있었다.
" 그것도 확실하지 않아요. 재임이 잘 못 들었을 수도 있고. 재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도형이 재임을 보며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좀 더 확인해 봐야지요.” 린제이가 도형에게 말했다.
“어떻게요?”
“재임 씨가 크리스 어머니의 소리를 들은 것은, 크리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재임 씨가 텔레파시로 소통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네, 그런 것 같아요.” 재임은 자신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도 소통을 해봐야지요.”
“ 그러니까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도형이 린제이에게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 그럼, 지금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 중에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을 찾아 재임 씨가 텔레파시로 대화를 해보면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죽고 나면, 또 그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해 보면 되죠.”
“가능할까요?” 재임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제가 알아볼게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는 소문이 퍼질 수 있으니까, 규모가 좀 작은 지방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좋겠어요. 이건 신과 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에요. 모든 인간이 죽은 다음 영원한 고통을 받게 할 수는 없죠.”
“텔레파시로 모든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네요.”
재임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지금 재임 씨가 텔레파시로 대화한 사람이 이도형 씨 부인과 크리스 어머니 두 분뿐인가요?”
“ 맞아요.” 도형과 재임이 동시에 대답했다.
“될 때까지 해봐야지요. 제가 알아볼게요. 그동안 재임 씨는 신을 계속 불러보세요. 신이 죽었다는 증거는 아직 없으니.”
말이 끝나자마자 린제이는 급하게 병원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정확히 5일이 지난 후 린제이는 도형과 재임이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왔다.
“ 12명의 환자를 찾았어요. 모두 같은 병원은 아니에요. 오늘부터 그 사람들을 만나줘요.”
린제이는 그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재임에게 명령하듯이 말했다.
“제가 차량을 준비했어요. 이도형 씨도 같이 가실 수 있죠?”
“당연히 같이 가야죠.”
세 사람이 탄 차량은 서해 바다가 보이는 작은 병원에 도착하였다.
일주일 동안 재임은 12명의 혼수상태 환자 중 5명과 대화를 나누는 데 성공하였다.
재임은 자신과 텔레파시로 소통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면, 큰 소리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그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죠?” 린제이가 재임에게 물었다.
순간 도형이 재임의 대답 대신 말을 했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신도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존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크리스 어머니의 소리를 재임이 들을 수 있었을까요? 크리스 어머니의 영혼이, 아니 신의 말대로 크리스 어머니의 생명 에너지가 우리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재임이 그 소리를 들었을 텐데.”
“맞아요. 나도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정말 제가 잘 못 들은 것일까요?”
“그런 거면 정말 좋을 텐데.” 그제야 린제이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