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새길>
딸들아.
재미로 동물을 키우기보다
너희의 손길이 꼭 필요한
귀한 생명으로
그들을 바라봤으면 해.
4. 애완이 아닌 반려로
유진이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장래 희망을 사육사로 정했을 정도다. 하지만 유진이가 처음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내가 유진이를 낳기 전까지 만져 본 동물이라야 고작 하루살이나 모기가 전부였다.
그런 엄마 밑에서 딸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동물을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 길에서 강아지만 봐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 다니기 바빴다.
미국 시카고에서의 첫날밤. 우리는 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였다.
“엄마! 아빠! 저기 커다란 짐승이 있어요.”
“큰 호랑이 같아요.”
유진이와 현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2층 베란다까지 뻗은 나무에 짐승의 굵은 허벅지와 엉덩이가 보였다. 사실 아이들의 과장이 지나쳤지만, 호랑이는 아니더라도 덩치 큰 고양이 같긴 했다.
“무슨 고양이가 저렇게 나무를 잘 타요? 여보, 무서워요. 빨리 문 닫아요.”
그때 남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저건 호랑이가 아니라 청설모야. 여긴 저거보다 더 큰 청설모도 많아. 미국은 짐승도 참 크지?”
그날의 공포가 머리에 깊이 박혔는지 그 후로 작은 청설모만 봐도 튼실하고 굵은 허벅지가 떠오르면서 징그러운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런데 시카고에서 본 동물은 조지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막상 따뜻하고 녹지가 풍부한 남부 조지아로 내려오니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달빛 아래 거닐고 있는 노루 가족과 마주치고, 길이 막혀 그 이유를 알아보면 줄줄이 도로를 건너고 있는 거북이나 오리 등을 볼 수 있었다.
또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사람보다 많았다.
한국에서 기대하던 소위 선진국 미국의 교양 수준도 정해진 그룹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공중도덕을 안 지키는 사람도 많아서 키우는 개가 똥을 싸도 치우지 않고, 목줄 없이 산책시키는 일도 흔했다.
우리를 보고 침 흘리며 달려오는 개에게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몸으로 막아서야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이 개 저 개 핥고 빠는 바람에 나도 그럭저럭 동물에 익숙해졌고 심지어 작은 동물은 스스로 다가가 만질 수도 있게 되었을 즈음, 아이들은 내게 강아지를 입양하자며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도 이제 강아지는 귀여워하니까 우리도 한 마리 키워요.”
“강아지는 손이 너무 많이 가. 엄마는 너희 둘 키우는 것도 힘든 사람이야.”
“우리 둘이 다 할게요. 샤워도 시키고 똥도 치워줄 거예요.”
“행여나 그러겠다. 지금 키우는 소라게 똥도 엄마가 치워주고 있잖아.”
“소라게 똥은 너무 작아서 집기 어려워 그래요. 강아지 똥은 크니까 우리가 치울 수 있어요.”
“처음 사온 며칠만 빤짝 이었지, 요즘 소라게 얼굴 본 적이나 있어? 어쩜 그렇게 무심하니. 그래 놓고 다른 동물을 또 키우자는 소리가 나와?”
그렇게 아이들은 조르고, 나는 잔소리하며 버티길 삼 년쯤 됐을까? 어느 날 유진이가 친구네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한 마리 얻어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 참 신기해요. 친구네 개가 얼마 전까지 개새끼였는데 벌써 커서 새끼를 낳았어요.”
아이 입에서 욕 비슷한 게 나왔지만, 지적하면 자신감을 잃을까 봐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
“개는 원래 사람하고 달라서 빨리 자라고 새끼도 빨리 낳아.”
유진이가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물었다.
“그럼 이 년에 개새끼였던 개가 자라서 저 년에 그 새끼가 또 개새끼를 낳을 수도 있어요?”
아이고! 아이고! 이건 순전히 번역기를 돌린 것 같은 유진이식 어법이었다. 유진이는 ‘this year’를 ‘이 년’이라 하고, ‘내년’을 ‘저 년’이라 말했으며 개가 낳은 새끼를 개새끼라 했을 뿐 절대 욕을 즐기는 아이가 아니었음을 여기서 밝혀둔다.
우리 병아리를 생각해서 난 평생, 죽을 때까지 닭고기는 입에도 안 댈 거다. 언니들은 콧방귀도 안 뀌지만 내 결심을 바꿀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개미도 무섭고 파리도 무섭던 시절 유독 갓 태어난 병아리에게서 만큼은 눈을 뗄 수 없었다. 학교 앞 육교에서 파는 병아리는 상자에 뽕뽕 뚫린 구멍 사이로 삐악삐악 울어댔다. 그 소리를 들으면 집으로 가던 발길을 멈추고 상자 안 병아리를 보려고 안달했다.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라.”
“병아리 얼마예요?”
“한 마리에 오백 원, 천 원에 세 마리.”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실 아이들은 돈이 없어 병아리를 못 사는 게 아니었다. 비싼 아이스크림이 이삼백 원 하던 시절. 군것질 좀 줄이면 병아리 한 마리 정도는 못 살 것도 없었다. 다만 아이들 머릿속에 무서운 엄마의 얼굴이 왔다 갔다 했으리라.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땐 지금과 달라서 강아지조차 반려동물은 커녕 애완동물로도 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저 마당 한구석에서 사람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을 처리해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니 병아리를 집에서 키우라고 선뜻 허락해 줄 부모가 몇이나 되었을까. 특히 다섯 자식만으로도 지치고 힘든 우리 엄마는 매일 병아리가 달걀을 낳아준다 해도 싫다 했을 거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리를 뜨고 혼자 남아 넋 놓고 병아리를 보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또 병아리 구경해?”
별아였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친했던 별아와는 거의 매일 붙어 지내는 단짝이었다.
“그렇게 좋으면 한 마리 사라니까.”
“엄마가 화내실걸.”
별아는 나와 달리 용감무쌍했다. 별로 거칠 게 없는 그런 친구였다.
“아줌마, 병아리 한 마리 주세요.”
아줌마는 퇴근길에 얻어걸린 고객이 반가워 얼른 종이봉투에 병아리 한 마리를 담아 별아에게 건넸다. 어찌나 부럽고 질투 나던지 봉투 속에서 꼬물대던 병아리를 꼭 도둑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너희 엄마는 병아리 키워도 괜찮대?”
“아니. 난 병아리 안 좋아해. 이거, 네 거야.”
“내 거라고? 안 된다니까.”
“일단 사가면 내다 버리라고 하진 않을 거야. 너희 엄마, 착하시잖아.”
마음은 울고 싶은데 내 입꼬리는 살포시 올라갔다. 별아 말이 옳은 것도 같았다. 엄마는 착하니까.
그날 우리 가족은 식탁 위에 삐악 소리 나는 상자를 두고 빙 둘러앉았다. 민주적 가정을 만들고자 노력하던 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열던 가족회의를 며칠 당겨서 열었다. 물론 의제는 ‘병아리의 처분’에 관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편을 들어준 아버지 덕에 병아리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막내가 동생이 너무 갖고 싶어서 대신 병아리를 샀을 거라며 엄마를 설득했다. 난 한없이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아버지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순순히 허락한 이유는 아버지의 기막힌 설득에 넘어가서가 아니었다. 육교에서 산 병아리는 명이 짧아 한 달도 넘기지 못한다는 걸 알고 당분간만 참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우리 집 병아리는 돌연변이였는지 꽤 무병장수하고 있었다. 무병장수의 결과, 병아리의 귀엽디 귀여운 노란 털은 누렇게 바래다 못해 하얘져 버렸고, 커진 몸집으로 라면 상자를 훌쩍 넘어 탈출을 감행하게 되었다.
병아리도 아닌, 그렇다고 닭도 아닌, 약병아리가 된 것이다. 그쯤 이름도 ‘아리’에서 ‘약아리’로 바뀌었다.
약아리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주인을 알아보며 재주를 부리는 것도 아닌데 외적인 귀여움까지 잃었으니 나도 더는 눈길이 가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투덜대기 시작했다.
“돌보지도 않을 거 뭐 하려고 사와가 내만 고생 시키노. 어이?”
“돌볼 거란 말이야.”
“니 약아리 똥 싼 신문지 며칠 동안 안 갈아 준 줄 아나?”
“……”
“확 내뿌릴란다.”
“안 돼!”
말은 그렇게 해도 여태껏 병아리를 정성껏 돌봐준 엄마였다. 설마 버리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애교도 없고 재미도 없는 약아리에게서 점점 관심이 떠나던 어느 날. 저녁을 먹는데 둘째 언니가 물었다.
“어? 약아리가 안 보이네.”
그제야 한구석에 있던 약아리의 상자가 없어진 걸 눈치챘다.
“엄마? 약아리 어디 치웠어?”
“일찍도 묻는다. 그래 관심도 엄스믄서…… 어제 경비아저씨 주뿟다.”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우리 약아리 아저씨 줬는데! 우아아 앙.”
그 울음은 사랑하는 약아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빼앗겼다는 억울함에서 나온 거였다.
나는 밥도 안 먹고 화가 나서 마룻바닥에 앉아 징징댔다. 오빠가 다정하게 달래주었다.
“약아리는 너무 커서 이 상자가 답답했을 거야.”
둘째 언니도 거들었다.
“약아리가 자라서 큰 닭이 되면 병아리 낳고 좋겠다.”
그러자 셋째 언니가 물었다.
“약아리가 암탉이었어? 몰랐네.”
순간 당황한 둘째 언니가 셋째 언니에게 쏘아붙였다.
“암탉 혼자 병아리 낳니? 어쨌든 약아린 엄마가 되든 아빠가 되든 할 거야.”
“언니도 약아리가 수탉인지 암탉인지 모르지?”
“그래 모른다. 그래도 병아리 낳으려면 둘 다 필요하단 건 안다.”
언니들의 투닥거림에 난 고개를 흔들며 악을 썼다.
“아니야. 아저씨가 우리 약아리 삶아 먹었을 거야. 경비아저씨 삼계탕 좋아한단 말이야.”
나는 아저씨가 약아리를 삶아 먹고 만족스레 이쑤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았다. 병아리를 키우면서도 잘만 먹던 닭고기였지만 앞으로 평생 닭고기는 입에도 못 댈 것 같았다. 절대로! 절대로!
그때, 큰 언니가 한마디 했다.
“그만 징징대고 아저씨한테 인터폰 해보면 되잖아.”
옳지. 그런 좋은 수가 있었네. 역시 냉철한 큰언니였다. 난 칭얼대는 것을 멈추고 경비아저씨한테 당장 연락해 보았다.
띠리리리리리리리리~
“예. 수위실입니다.”
“아저씨. 여기 1206혼데요. 아저씨가 우리 약아리 아니, 병아리 가져가셨죠?”
“병아리? 아니. 난 안 가져갔는데?”
“네……”
난 인터폰을 끊고 엄마에게 소리치며 다시 울었다.
“아저씨가 안 가져갔다잖아!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으앙~”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엄마는 약아리를 어디에 버렸을까. 풀밭에 버려놓고 맘대로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이게 했을까? 아니면 시장에 가서 닭집에 팔아버렸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수록 평소 관심도 없던 약아리에 대한 애정이 마구 솟구치는 걸 느꼈다. 짧은 순간 엄마를 원망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하는데 엄마가 빽 소리 질렀다.
“가시내야. 약아리 가져간 아저씨는 내일 안 오나? 고마 안 그칠래?”
그랬다. 약아리를 준 건 어제였고 그 아저씨는 밤샘 근무하고 오늘 아침에 교대했으니까 지금 통화한 아저씨는 다른 아저씨였다. 약아리를 가져간 아저씨는 내일 다시 나올 거다. 그것도 모르고 인터폰 해보란 큰언니는 냉철하지만 머리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다음 날 학교에서 100m 달리기를 하듯 달려와 경비실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저씨. 제 병아리 어떻게 하셨어요?”
“아저씨 집 마당에 갖다 놨지. 그놈은 너무 커서 아파트에선 이제 못 살아.”
내가 올 거라고 엄마가 미리 말했는지 아저씨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질문에 답했다.
“우리 약아리 안 잡아먹으실 거죠?”
“안 먹지. 그놈 튼튼해서 알도 잘 낳겠더라. 아저씨가 잘 키워서 알 낳으면 달걀 갖다 줄게.”
“약아리가 암탉이었어요?”
“그것도 모르고 키웠어? 걔 암탉이야. 육교에서 산 병아리가 그렇게 튼튼한 거 처음 봤다. 네가 잘 돌봤나 보더라.”
난 별로 돌보지 않고 엄마 혼자 키워냈지만 그래도 내 병아리가 튼튼하다니 기분은 좋았다.
“아저씨. 그럼 다음에 제 병아리가 닭 되면 꼭 보여주세요.”
“알았다. 걱정 마라.”
아저씨의 말을 믿으며 나는 약아리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떠난 것은 금방 잊히는 법. 며칠 후, 식탁에는 닭볶음탕이 올랐고 난 울며 한 결심 따윈 모두 잊고 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 후로도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이렇게 3대 남의 살 중에 닭고기를 제일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약아리 이후 한 번도 동물을 키운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움보다 돌볼 의무가 더 많아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토록 반려동물을 원했지만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것도 나처럼 동물을 키우다 보면 이내 귀찮아질 테고 그때부터는 모든 게 내 일이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나의 실패는 나의 것이고, 아이들은 끝까지 잘 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생명을 온전히 받아들여 책임질 준비가 되었다면 아이들의 의견대로 반려동물을 키울 기회를 줘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