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이삼사 자유 Jul 18. 2022

도시락을 사수하라!

전화를 돌리고, 또 돌리고

퇴근 무렵, 사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낯익은 번호였다. 대개 오후 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급한 것 또는 민원전화이기에 으레 긴장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가장 시골에 사는 a아동의 할머니의 전화였다.


연로한 a할머니는 초등학교 손주들을 직접 키우며 아이들의 식사 해결을 지역사회 대기업에서 후원해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새로운 기사가 배송을 했는데 도시락이 도착을 안 했다며 이따 아이들 저녁을 차려줘야 하는데, 차려줘야 하는데 하며 안달을 내셨다. 해당 서비스는 우리가 제공하는 게 아니었기에 읍사무소에 문의해보셨는지 여쭈어보자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를 안 받는다며, 전화기 너머로 억울함이 물씬 느껴졌다. 할머니가 직접 알아보기엔 너무 어려울 것 같아 나도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읍사무소에 연락했으나 담당자가 휴가라 하기에 본청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여 도시락 배송업체 번호를 얻었다. 본청 담당자는 오배송되어도 재발송 안된다며 곤란해했다. 괜찮다며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도시락 배송업체와 통화를 통해 배송기사님 연락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배송기사님이 부재중이었다. 회사 전화, 출장 전화로도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문자를 남기고 할머니께 번호를 알려드렸다.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어야 할 텐데..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인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아 퇴근을 앞두고도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배송기사님께 연락이 닿았고 시골집 특성상 창고 등이 있어서 처음 와보신 기사님은 집을 헷갈렸던 모양이셨다. 집 입구에 하얀 패널 문 앞에 도시락을 두셨는데, 할머니는 늘 배송받던 위치에 도시락이 없으니 그냥 놀란 마음에 잘 찾아보지 않고 냅다 전화를 해주신 거였다. 전화를 걸고, 걸고 또 걸어 결국 해결을 했고 할머니는 도시락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과연 사례관리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냉정하게, 그리고 드라이하게 응대했다면 그건 저희가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라 할머니 읍사무소에 문의하세요 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맞춤형 사례관리를 실시하는 실무자로서 연로한 할머니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내가 주도적으로 대신 나서 주는 것이 빠른 일처리가 가능할 수 있었다. 한편, 밭을 매던 할머니가 기사가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서 왜 문 앞에 없다고 바로 전화를 주는지 좀 더 잘 찾아보시고 연락 주시라고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당황한 할머니에겐 어려운 일이었겠거니 싶어 내가 좀 힘들어도 잘 도와드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물고기 잡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의 나의 사례관리는 내가 할머니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믿지 않는다. 이번 일을 통해 할머니에게 도시락은 늘 잘 배송되고 있고 다만 이런 경우 좀 더 마음을 놓고 기다리며 찾아볼 것을 안내해드릴 수 있었다. 이런 게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아닌가 싶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락사수 후일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