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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Oct 26.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오해

요즘의 우리 4살인 인덕이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 짜증을 부릴 때가 많다.

이유는 자기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내가 못하게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걸 내가 하게 만들어서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는 도중에 아이는 나에게 짜증을 부렸다.

순간적으로 아이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얘가 왜 이러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지난날의 나를 생각해보면

나는 아침에 이유 없이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다.

워킹맘이었을 때도 워킹맘이 아니었을 때도 나는 아이를 보채며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서두르며 아이를 재촉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 청소를 하고 가는데 청소를 하는 도중에 아이가 장난감을 부수거나 더 어지럽히면 이상하게 내 마음속에 화가 났다. 그 물건이 만약 기차놀이이거나 자동차와 도로가 있는 시리즈 장난감이라면 나는 그걸 또다시 반복해서 조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화를 냈다.


아이는 아침에 자기가 원하고 싶은 대로 놀고 싶은 방향이 있을 텐데 , 나는 아이를 아침부터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종종 그런 말을 하고는 했다.

"너는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밥을 좀 먹어야지, 못 먹고 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언어들을 써가면서 아이에게 투정을 부렸다. 나는 어른이긴 어른이면서도 아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비좁은 골목길처럼 좁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툭툭 내뱉었고, 그런 말들과 행동들이 모여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결과를  본인 스스로가 만들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는 화를 내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엄마가 이해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을 압박한다고 오해를 했을 것이다. 내가 자신을 동생보다 덜 사랑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아이는 그렇게 매일매일 나를 오해했다.

나는 아이를 , 내가 청소했는데도 청소를 또 하게 만드는 아이, 말을 안 듣는 아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아이 , 날 힘들게 하는 아이 이렇게 나도 아이를 오해하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거나, 예전의 텔레비전 방송들을 보면 버릇없는 아이들을 보고는 했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면, 부모가 잘못 키웠다는 생각부터 했다. 아이를 저렇게 방치하고 버릇없게 키웠으니까 그런 환경이니까 버릇이 없지, 라는 그런 짧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어리석게도 부모와 아이를 내 기준대로 판단하고 오해를 했다.

요즘에 방송이나, 아이를 키우기 위한 육아 서적을 볼 때면 아이에게도 인격이 있으며 존중을 해줘야 하는 존재라는 걸 강조한다. 매번 그런 종류들의 글들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방송을 보고,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아이를 오해를 하기만 했지, 이해하고 보듬어주려는 노력은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행동을 나의 생각대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이 나와 맞지 않거나 , 나를 상처를 주는 행동, 나를 화나게 하는 행동이면 우리는 그들을 오해하기 시작하고 대화를 많이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옮긴다. 그러면 듣는 그들 역시도 그의 행동과 말을 오해하기 시작한다.

이 불완전한 인간의 상대방을 위한 이해력은 시대에 비해 발달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가족들과 내 아이들을 위해 오해하는 능력보다, 이해하는 능력을 더 갖춰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다른 이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오늘도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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