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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03. 2020

동치미를 만들게 되었다

동치미가 익어가는 시간

예전에 어릴 때는 동치미나, 김치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편식하는 것도 있었지만 어린 마음에 이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기와 햄이나 소시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김치의 맛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라면을 먹을 때 총각김치를 먹으니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경험을 해봤고, 20살 정도가 되기 시작하니 김치에서 느껴지는 깊은 맛이 입맛을 돋우게 해 주었다.

나는 사실 요리를 고등학교 이후부터 해오긴 했었지만 그 요리들은 내 방법대로 하는 요리라 요리 축에 끼지는 못한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다루는 것도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첫 시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나는 요리에는 커다란 재능이 없었다.


그렇게 살림에는 실력이 없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되어, 신랑의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의 국과 찌개를 끓여주게 되었는데 한 가지 시도를 못하는 게 있었다면 바로 김치류의 음식들이었다.

김치를 만들 때는 풀을 쒀서 넣어야 하고 , 배추도 소금에 절여야 하는데 나는 이런 과정들이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시댁에서는 김장을 크게 담그시기 때문에 나는 일손을 거들어주면 김치가 생기기 때문에 김치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크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과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는데 문득 국이나 물을 많이 먹는 아이를 보고

아이들이 먹는 물김치가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덕이가 국이나 물을 잘 먹네 "
"그러게"
"음, 물김치나 그런 게 있으면 잘 먹을까? 어린이집에서는 김치를 잘 먹는다는데"

그렇게 나는 흘려서 신랑에게 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시댁에 가게 되었는데 김장 이야기가 나왔고 신랑이 시어머니께 말하기를

"효정이가 물김치 담그는 거 배우고 싶대요"라고 먼저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끝으로 나의 동치미 만들기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신랑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레시피를 알려주셨고 집에 가서 이렇게 하면 된다면서 천천히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우리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시는데, 내가 정말 칼질하나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는 걸 아셔도 혼을 내시거나

면박을 주시거나 하시지 않았다.

늘 이건 위험하니 내가 할게, 너는 이거 해봐 라며 손을 많이 쓰는 일에는 자신이 하셨다. 아마도 칼을 잘못 썼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염려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씀 같다.

그리고 끝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나도 처음에는 못했어, 하면 할수록 느는 거야"

라고 말해주셨다. 그 말에 나는 늘 용기를 얻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야채 다지기는 어느 정도 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농촌에 계시는데 마당 텃밭에 이것저것 심어놓으시다 보니 알려준 대로 동치미를 만들어보라며 배추와 무를 주시기로 하셨다.

집에 가서 이걸 굵은소금으로 절이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신랑이랑 나 모르게 이야기를 다시 하셨는지 아예 배추와 무를 큰 플라스틱 통에 잘라서 넣어주시고 소금까지 절이시고는 가져가라면서 챙겨주셨다.


동치미를 알려주는 일인데, 내가 할 일이 없게끔 본인 손으로 직접 준비를 다 해주셨다.

결국 동치미는 어머니가 거의 만들어주신 꼴이었다.

이제 이 동치미에는 내가 물을 붓고, 소금과 뉴수가로 간만 맞추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만 나에게 주신 것이다.

요리를 잘 못하고, 살림에는 재능이 없는 며느리이지만 어머니는 동치미를 만드는 일 조차도 나를 배려해주셨다. 동치미는 우리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그늘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일주일의 시간 속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치미가 익어가는 시간만큼,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사랑도 같이 익어가고 있다.

시간과 사랑의 힘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난다는 점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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