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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16. 2020

월차를 쓰던 날, 나는 걸었다

혼자 걷는 쓸쓸함과 공존하는 기쁨

사진은 몇 년 전의 사진으로 내가 병원 근무를 하던 시점에, 월차를 쓰던 날 집 근처에 있는 호암지라는 곳을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나는 지금 나이에는 걷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지만 , 원래 태생 자체가 걷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아빠 차를 타거나, 마을버스를 타거나, 통학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거의 나는 차를 이용해서 다녔었다

걷는 것에 대해 익숙하면서도 낯설어하곤 했었다.

혼자 걷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나는 지루한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어폰이 있으면 몰라도 없는 날에는 굳이 걸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학생 때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걷기는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빠 차를 타고 주말에 드라이브를 가는 것도 좋아했었고, 20대 중반 남자 친구를 사귀어 데이트로 단거리 드라이브를 갈 때에도 나는 기분이 좋을 만큼 차 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던 내가 걷는 것을 결심한 것은 , 내가 월차를 쓰던 날이었다.

월차는 쓰기 몇 주전에 결정을 하는 거라 , 나는 월차를 쓰게 되면 그날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고민을 했었다

서울을 잠시 다녀올까? 아니면 시내 구경을 할까? 아니면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경험을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호암지라는 이름이 있는 호수 공원을 걷기로 했다.

이 곳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얼핏 보기만 한 곳이라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이번에는 혼자 먼 거리를 걸어보기로 했다.

다른 누군가에게 같이 걷자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이사를 온 탓도 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가 되어가는 시간이 많다고 느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혼자 보내는 시간도 나름 괜찮다고 느꼈다.


여기서 충주에 호암지란 곳은 생태 호수공원인데 ,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으며 오로지 걷는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공원 한 바퀴를 다 돌려면 거진 2시간이 걸리는 코스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긴 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결심했다.


그리고 몇 주의 시간이 지나 , 월차를 쓰던 날 나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이어폰과 핸드폰에 걸으면서 들을 노래들 목록을 정리한 뒤, 운동화를 신고 편한 복장으로 공원에 왔다.

사실, 그냥 걷기 위해 왔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생각을 조금 더 많이 하고 싶어서 걸었다. 그때의 시기에 나는 자존감이 떨어질 때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잘 못하던 때라 나 혼자서 삼키고 견뎌내고 있는 시기였었다.

공원에 발을 들이니, 오전인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고 주변 경치들을 바라보니 정말 멋진 광경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때의 날씨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쌀쌀한 가을이었던 것 같은데 따뜻한 차를 한 손에 들고 걸으니 마음속에 스트레스들이 해소가 되는 듯했다.



그 날만큼은 혼자 이렇게 큰 공원을 걷는 것도 처음이었고 , 월차를 쓰는 날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홀로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날 동안에는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20대 중반의 걱정 많은 나라는 사람과 같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너무 좋지?"

"잘 나온 것 같아"


걸으면서 풍경들의 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차들의 광경도 보고 , 떨어지는 낙엽들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다 보니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경우보다 내 생각에 내가 못 이겨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로 20대의 나를 끌고 왔었는데 그 20대의 나를 나는 진정으로 위로를 해준 적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가 지나가는 좋은 글귀를 읽으며 마음에 약을 주었지만, 임시방편인 약이었고 본질적인 고민과 외로움은

없어지지는 않았다.

내 안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나는 행복에서 점차 멀어졌고, 회사에서든 집이든 내가 있는 곳은 편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보다 조금만 더 사랑할 걸 ,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가질걸 이라는 후회가 남는다. 그저 과거의 나는 내가 힘든 상황들을 잘 이겨주기를 바라고만 있었다.

문제가 생겨도 내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이라고 몇 살 더 먹었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때보다는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아 지금은 지금의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그날은, 걷기 위해 결심을 하고 그 결심 덕분에 중간쯤 걸었을 때 이 먼 거리를 걷는 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도 했지만 끝에는 내가 못 본 세상들이 있을 것 같아 그날 나는 2시간이 걸리는 공원을 완주를 했다.



걷다가 뛰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하고 ,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자연 속에서 그저 자연에 빚을 지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연적인 모습으로 그 풍경들과 나는 하나가 되었었다.

흩날리는 낙엽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었고, 같이 걷는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그날 나는 월차를 쓰고 나온

혼자 걷는 직장인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2시간이란 거리를 걸을 수 있도록 자연은 아름다운 풍경들로 하여금 날 도와주었다.



마지막으로 ,

월차를 쓰던 그날은 많은 생각들과 고민들이 쉽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처음 걷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여유, 쓸쓸함, 기쁨,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 아름다운 자연풍경 등 많은 것들을 나는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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