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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17. 2020

오늘도 엄마의 식사를 챙깁니다

엄마의 친정이 되고 싶은 딸

결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자라왔다. 내가 직접 하는 게 아니고 옆에서 잘 도와드린 적도 없었으니 음식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도 없었고, 이 나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이 요리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랐었다.

엄마 역시 마찬가지로 나에게 설거지와 요리는 자신이 할 테니 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차피 시집가서 할 건데 지금부터 뭐하러 하냐면서 내가 할 테니 가서 쉬라고 하셨고 그렇게 집안일로부터 나는 멀리 있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엄마 아빠가 주말부부를 하시면서, 내가 아빠 저녁을 챙겨드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거의 20살 정도 무렵인 것 같다. 친할머니를 곁에 모시면서 살기 위해 아빠는 서울에 있던 집을 팔아 전셋집을 하나 마련한 후 나와 아빠는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 남은 돈으로는 충주 아파트를 매매를 해서 동생과 엄마는 충주 본가에서 지내셨다. (매매와 전세를 같이 하면 왠지 부자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 충주 집값은 다른 지역들보다 낮았다.)


그렇다 보니, 그때 이후부터 아빠의 식사는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모양은 이상하지만 그래도 먹어줄 만한 쿠키를 오븐에서 구워내기도 하였으며 통조림 꽁치로 간편한 꽁치 김치찌개와 소고기가 안 들어간 심심한 미역국, 그리고 김치만 들어간 김치찌개 등 요리라고 할 수 없는 요리들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지내왔었다.


그러다가 아빠도 충주로 내려가시고 , 나는 서울에서 몇 개월 동안을 혼자서 더 지내다가 충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원래 살던 지역과 친구들을 포기하고 충주로 온 것은 큰 결심이었지만 친구들과 서울의 빛나는 문화생활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부모님 곁에 더 있고 싶었다.

부모님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한 내가 복을 받았는지, 여태 살던 집보다 훨씬 좋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으며

나는 거의 반지하에서 살아왔었다. 그렇다 보니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행복감 같은 게 몰려왔었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지금의 신랑을 만나 남들만큼은 살게 되었다.

세월이란 것이, 가난한 삶에서 여유가 있는 삶으로 바뀌자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살림을 하는 주부가 되다 보니 이번에는 내가 엄마 아빠의 음식을 챙겨드려야 되겠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그래서 첫째와 동생을 봐주시러 오시는 엄마에게 용돈을 챙겨드렸지만, 챙겨드리지 못하는 달에는 저녁에 먹을

저녁거리나 간식들을 챙겨드리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롤케이크와 인터넷으로 사다 놓은 커피우유들, 그리고 반찬을 주문할 때 조금 더 여유 있게 주문해서

엄마의 식사를 책임질 반찬들을 챙기고,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 김치류 들과 과자를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과자들도 집으로 가시는 길에 챙겨드렸다

그렇게 챙겨드리는 것을 2년 넘게 하다 보니 , 엄마는 내게 그러셨다.


"엄마가 널 챙겨줘야 하는데, 내가 맨날 너한테 받아가기만 하네 "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하셨다.

그런데 , 사실 나를 20년 동안 키운 시간들과 장애가 있는 동생을 키우면서 힘들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자랐던 환경들은 너무도 불우한 환경이었고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엄마는 결혼을 하셨어도 제대로 된 친정이 없었다. 아들들만 중요시하는 외할머니로 인해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받은 적이 없으며, 거의 좋지 않은 일에만 이용을 당해 엄마는 외할머니와 인연을 끊었던 일도 있었다.

인연을 끊은 일로 인해 어렸을 적에는 외할머니의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가 야속해 보이기도 하고, 고집불통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엄마에게 더 이상 외할머니와 연락하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내시다가 나중에 결국은 풀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를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엄마의 식사를 챙겨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남동생들이 있다보니 딸이라는 이유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외롭게 지냈을 엄마를 위해, 그리고 아직은 쑥스럽기도 하고 감정표현이 서툰 나라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나는 엄마의 친정이 되어드리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시간들을 가끔은 쓸쓸하게 기억할 , 엄마를 위해 아주 가끔씩은

엄마의 엄마가 돼보려고 한다.

음식을 챙겨드리는 일은 별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끼니를 거를 엄마의 모습보다는 내가 챙겨준 음식들을 맛있게 드실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면 내 입가에도 행복이라는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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