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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18.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꼬마전구처럼 빛나는 너에게

첫째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둘째에 비해서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련하게 하는 그런 구석이 있었다.

첫째를 임신을 하고 나서 그 해가 여름이었는데 ,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없던 친정집에서 있기에는 나는 매 시간마다 곤혹이었다. 입덧이 심해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며, 울렁거리는 속으로 먹으면 먹은 대로 토하는 지경이라 첫째 인덕이를 가졌을 때 음식을 원 없이 먹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먹어도 토하고, 먹는다 해도 적게 먹다 보니 아이에게 영양분이 별로 안 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첫째를 보면 마음 한편이 답답해지다가도 발달이 느린 이유가 내 잘못인 것 같아 아이가 안쓰러웠고 다른 아이들처럼 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정상적으로만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지금으로서 가장 소망하는 것은 남들보다 1년 학교를 늦게 들어가더라도 정상적으로 말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 , 하고 싶은 것들을 끊임없이 말하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단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공부도 잘할 필요도 없으며, 특별히 운동을 잘하거나 , 영재 소리를 들을 만큼 뭔가를 잘하거나 그런 것들을 바라는 마음은 접어둔 지 오래였다.

나는 아이가 남들과 똑같이 경쟁을 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살아가기보다는

그 삶이 평범할지라도 많은 고생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문득 , 아이를 보다 보면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때로는 아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인덕이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 거야?"

"인덕이는 커서 뭐가 될까?"라는 말을 아이에게 해준 적이 있다.

돌잔치 때는 청진기를 잡았지만 , 의사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고 나는 인덕이 뿐만 아니라 둘째인 현덕이도

본인이 원하는 일에 도전을 해보고, 실패를 겪더라도 성공보다 실패에 더 익숙해지고 실패로 인해 상처 받지 않는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아이는 하루하루 성장해가며 , 또래보다는 느릴지라도 자기 안에서는 최대한의 발달과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 하는 행동, 옹알이 등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이 너무나 예쁘다.

남들보다는 느리지만, 그 느림으로 인해 인덕이가 좋아지고 있다는 칭찬을 받을 때면 나는 아이의 발달 과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 아이가 남들처럼 자랐다면 아이의 모든 행동들과 언어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아이의 성장과정을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왜 영재가 아닐까 라는 오만까지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센터에서 말을 잘하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때면, 길을 지나갈 때 말을 잘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우리 아이와는 나는 언제쯤 대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와 좌절도 있지만 , 현재 삶을 최선으로 살고 있는 아이에게 너무 다그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세상에서는 나보다 더한 부모들이 많으니 나도 내 불행만을 크게 생각하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마음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가끔은 잘 안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홀로 삼키는 아이로 크는 게 아닌, 부모와 상의하고 고민을 얘기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힘든 세상을 자기 혼자 견뎌내려고 하는 애어른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가 어릴 때 그랬기 때문에, 그 흔한 투정이나 고민거리 하나 부모님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자라왔기 때문에

내 아이들 만큼은 조금은 철이 없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집에 없는 살림을 먼저 걱정해서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로 크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신랑과 내가 아이에게 솜이불 같이 포근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가끔은 화를 내는 무서운 엄마이기도 하겠지만, 평소의 엄마는 따뜻한 존재, 의지 할 수 있는 엄마로 남고 싶다.


며칠 전에는 신랑이 전구를 사 온 적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고 저렴한 가격으로 사 왔었다.

그 전구들을 거실 벽에 달았고. 거실에 불을 끄고 보자  그 반짝이는 빛들은 참 아름다웠다.

그러다 문득  신랑이 사 온 조명 안에 꼬마전구를 보며 생각이 들었다.

꼬마전구는 다른 조명들보다 생김새가 작으며, 빛을 발하는 것도 어쩌면 작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두운 날 꼬마전구 하나로 온 세상이 환하게 밝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가로등같이 커다란 조명이어야만 어두운 골목길을 밝게 비춰줄 수 있지만, 꼬마전구라도 해도 빛을 발하는 전구가 아닌 것은 아니다.

꼬마전구 역시, 빛이 나는 존재며 그 존재 역시 없으면 안 되는, 각종 기념일 날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 역시, 사회에 큰 사람으로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그 존재로 인해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꼬마전구가 내뿜는 따뜻한 빛처럼, 우리 아이들이 성장할 사회의 모습들도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회로 변했으면 한다.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좋겠다.




 ( 위 사진은 신랑에게 부탁한 꼬마 전구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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