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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20. 2020

외할머니와 밤식빵 그리고 나

가끔은 정말 그리운 그 시간들

나는 지금도 빵을 좋아하지만 예전부터 좋아하는 빵이 있다면 그 빵은 바로 밤식빵이다.

밤이 촘촘히 들어간 밤식빵은 우유랑 먹으면 정말 맛있었으며, 한 봉지만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든든한 그런 존재였다.

우리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도 다방을 하셨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동네에 작은 산을 다녀온 후, 돌아오는 길에 과자나 빵, 과일 같은 것들을 사주셨다.

그때의 가격은 지금보다는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 돈을 적게 들여도 양 손에는 먹을 것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 가격으로 뭔가를 사려면 과자 한 봉지밖에 못 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때 당시를 회상하면 할머니와 시장을 갔을 때 늘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아침마다 다방에서 소시지를 구워 나에게 아침을 해서 먹이셨고, 돌아오는 하교 길에도 간식을 사주셨다. 어린 나이에 지하에 있는 다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가 날 안 좋게 볼까 봐 스트레스였긴 했지만

어름에 모기를 쫓는다고 쑥을 태워서 다방 여기저기 향을 뿌리는 그 모습도 좋았고, 따뜻한 연탄불에 주전자를 올리는 외할머니의 모습도 좋았다.

다방의 위치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우리 집으로부터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라 나는 늘 외할머니의 다방에서 둥굴레차나, 율무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내가 중학생이 되던 무렵에는 다방을 그만 하셨지만 그때의 그 모습은 이제 볼 수가 없기에, 나는 다방도 그 시절의 나도 외할머니도 모두 그립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외할머니와 같은 연립에 살았기 때문에 늘 아침 점심 저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중학교 이후에는 우리 가족이 옆 동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할머니를 2주에 한 번씩 보거나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보지를 못했다.

나는 그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손녀와 늘 같이 시간을 보내던 외할머니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외할머니께서는 당뇨가 있으셨지만 빵을 좋아하셨는데, 항상 빵집에 가면 빵을 몇 개 고르시고는 자신이 드실 빵은 한두 개 남겨놓고, 나에게 밤식빵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빵을 사주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밤식빵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밤식빵을 많이 먹긴 해왔으나, 질리지 않는 빵이었다. 촉촉한 결의 느낌도 좋았고 달달하고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밤이 들어가 있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더 이상 볼 수 없는 할머니이지만, 가끔 빵을 먹을 때면 엄마와 대화를 나눈다.


"효정이는 빵 귀신이네"

"예전에 할머니가 참 좋아하셨는데, 빵 많이 사주셨지"

라는 대화로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를 기억한다. 우리 엄마에게는 모질게 대하셨던 분이었지만 나에게만큼은

딸과 아들이라는 선으로 구분 짓지 않고, 아기 때부터 날 데리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시느라 금팔찌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외할머니는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다만, 지금 아쉽고 가슴이 먹먹한 것이 있다면 내가 낳는 아이들을 보셨다면 어땠을까?

혼자서 계시다가 돌아가셨기에 그 당시에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외할머니는 지금까지 살아계셨을까?

그렇다면 지금도 마찬가지로 손녀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빵 한 봉지를 사 오시며 밤식빵을 건네주시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있다.


첫째를 임신하고 나서 외할머니댁에 간 게 마지막이라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렇다 보니 아이가 예쁜 행동을 할 때마다, 그리고 동요에 맞춰서 춤을 출 때나 , 간식을 달라고 할 때

이 모든 모습들을 할머니가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몰려온다.


외할머니는 이제 돌아가셔 내 옆에 안 계시고 , 죽음이라는 선 앞에서 나는 그 선을 넘고 외할머니는 볼 수 없지만 어느 빵집에 있는 밤식빵들처럼 아주 가끔은 외할머니가 내가 갈 수 있는 위치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외할머니를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말하고 싶다.


"할머니, 보고 싶어요.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나면 볼 수 있겠죠.

그때까지 저 진짜 열심히 살게요. 지켜봐 주세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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