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인 Nov 21.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아이는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첫째를 낳고 나서는 나는 첫째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 내세우기가 불안했고 자신이 없었다.


잘생기고 귀여운 외모로 첫째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를 좋아했지만, 또래보다 느린 아이를 보통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건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유쾌하지 않은, 불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누구를 만나는 일도, 내 자식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자식 자랑을 한다는 것은, 쓸모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랑할 상황은 안되었지만)


아이는 나의 물건이 아니었고, 크고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나의 존재는 아이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아이가 만약 , 이 세상에 없을 시에 나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지금은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들은 순탄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부모로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고 그 임신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준비되지 않은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당혹감은 말할 수 없었다.

직장을 들어가더라도 3개월 동안의 수습기간이란 것은 존재하는 법인데, 부모가 되는 길에는 수습 기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몇십 년 동안 이어지는 정규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날 가르쳐주는 상사도, 내가 힘든 것들을 이해해주는 동료들도 육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았다.

그렇다 보니 외로워지고 우울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해지는.

워킹맘이나, 전업주부 그리고 남편들까지도 육아를 하면서 우울해지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 힘들고, 밥 먹을 시간도 나 혼자 무언가를 하는 시간도 여유치 않아 ,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도 아이가 자고 있을 때나 하루에 한 시간씩 여유를 내서 쓰고 있는데 이렇게 늘 시간이 없는 나 자신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해왔는데, 어느 날부터는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과연 어떨까?'


나라는 엄마를 만나, 무언가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혼이 나고, 밥을 먹다가도 혼이 나는 상황을 아이는 이해를 할 수 일을까?

아이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고, 여러 가지를 만지고 느껴야지만 발달에도 좋은 것임에도 나는 아이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고 행여나 다칠까 봐 조마조마하는 마음에 아이를 다그치고 혼을 내었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아마도 온실 속에서 화초를 키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어쩌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느리기 때문에 그 마음의 끈을 놓지 못해서 온 마음으로

이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 더 이상 잘못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으로 인해 아이가 더 마음껏 뛰어놀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내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자책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 자책감과 아이에게 가지는 미안함으로 인해 이제는 마음을 내려놔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걱정들은 또 다른 걱정을 만들고, 그 걱정들로 인하여 커다란 마음의 장애물을 만들 수 있으니 아이를 방해할 수 있는 내 생각의 장애물들을 하나씩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가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느리기는 하지만,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따라가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아이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작은 것에도 연연해하는 (상처 받는) 너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