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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25.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자책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의 행동을 보고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나를 볼 수도 있으며, 큰 소리를 내며 혼내다가 자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안쓰러워 자는 아이의 얼굴에 뽀뽀를 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날들이 많았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 소파에 올라가 당장이라도 뛰어내리려는 위험하게 떨어질 것 같은 아이의 모습에

하지 말라고 고함을 쳤던 날들도 있었다.

둘째가 요새 조금씩 걷는 것에 대해 자신감도 생기고 하고 싶은 의지도 강하다 보니 형이 하는 행동은 그대로 따라 하려고 하기도 하고, 형이 하는 행동, 먹는 것, 엄마가 형을 안아주는 것까지도 질투를 하며 둘째는 형을 부러워했다.


첫째를 생각하면, 아직 4살밖에 안되었을 시기에 형 노릇을 해야 하며 아기 대접을 더 받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너무나 예쁘게 생긴 둘째에게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기에 양가 부모님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둘째에게 관심을 주면, 의기소침해 있는 첫째가 불쌍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또 반대로, 첫째가 아닌 둘째로 태어나 엄마의 사랑을 50퍼센트만 받는 모습도 안쓰러웠고 형에게 밀리고 머리를 콩콩 맞는 모습에 첫째로 태어났다면 저렇게 힘으로 밀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때는 내가 요술이라도 부려 아이 둘에게 사랑을 100퍼센트로 주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두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속이 뭔가로 꽉 차 있는듯한 행복한 기분들이 생겼는데 아이들의 웃는 모습

가끔씩 몸개그 비슷하게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가정을 이루는 행복이란 건 이런 거구나 신랑과 두 아이들과 차에 타고 밖을 돌아다니지는 못하더라도 드라이브를 하고 있을 때면 일주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들이 풀리면서 동시에 기분 좋은 편안함이 들었다. 아이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이면서도 누구보다 날 웃게 해주는 존재들이었다.


둘 다 다른 아이들보다는 발달이 조금 느린 상태라 내 눈에는 하루하루 똑같아 보일 때가 있고 정체되어 보일 때가 있는데 아이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을 해오고 있었다.

지금 시기의 또래들보다 말도 느리고 신체 발달이 느리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어린이집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무척 잘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의 일부 모습만을 보고 판단해 혼을 내는 경우가 있으니 누군가 나를 본다면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내가 후회하는 순간은, 두 아이들을 야단을 치고 혼을 냈는데 그렇게 못난 엄마인데도

잠을 잘 때는 항상 옆에서 자며, 내가 안아주기를 바라고 뽀뽀도 먼저 해주는 순간들이다.

하원 후에 버스에서 내리며 인사하는 시늉을 하는 둘째와, 버스 계단을 내리면서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첫째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들은 내가 가진 포용 능력보다 더 큰 사랑으로 포용하는 존재라는 걸 느낀다.

아마 지금 시기에 아이들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클 거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어,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 탓을 하고 내가 화나고 짜증 나는 이유를 나 자신에서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닌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리는 미련 맞은 나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은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고, 발달이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발달이 느리고 성장이 더딘 건

바로 나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성장이 필요한 어른이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의 시선으로 나도 세상을 보고 싶다. 내가 보는 세상보다는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는 것이 분명 더 아름다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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