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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26. 2020

딸의 집으로 출근하는 엄마

손자들을 이뻐하는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지금은 워킹맘의 생활을 접었지만 내가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음을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매일같이 주말을 빼고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는 우리 엄마 덕분이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몰랐었던 결혼 생활과 육아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식비와 여러 가지 집에 들어가는 생활비들은 더 이상 무시를 못할 정도로 부담이 되던 날의 연속이었고 혼자서 돈을 버는 신랑에게도 미안했으며,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우리 집에 손자들을 보러 오신 엄마에게 말했다.


"요즘 생활비가 좀 부족해지다 보니 힘드네, 일을 하려고 생각 중인데 일을 하면 생활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기도 하고"

이 말에 바로 엄마는 반응하셨다.


"그래. 엄마가 애들 봐줄 테니까 너는 일해"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대화를 통해 어느 한쪽이 희생해야 하는 것인데도 엄마는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엄마의 품에서 조금 더 일찍 벗어나야 하는 손자들보다는 생활비에 허덕이는 딸의 모습이 엄마에게는 더한 안쓰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20분은 족히 달려야 할 거리임에도 엄마의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년 9월 말 무렵부터,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했는데 그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과 일을 배우는 시간이 거진 3개월에서 4개월이었다. 공부하는 시간 동안은 누가 돈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엄마에게 드릴 용돈은 나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뿐이었고

조금은 높은 점수로 나는 그 시험에서 합격해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집에서 나가게 되는 시간은 거진 8시 5분이라는 시간이었는데 둘째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이었므로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는 시간은 새벽 6시를 넘은 시간이 될 때도 있었으며 조금 늦는다 해도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 시간을 생각할 때는 12월이다 보니 바람도 불고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그 먼 거리를 버스를 타고 손자들을 봐주기 위해 집으로 오는 걸 마다하지 않으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의 나라면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에 일어나서 추위를 뚫고 자식의 집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나는 며칠 동안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내가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집으로 오기 힘들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하셨으며 아침 시간부터 내가 퇴근하는 5시까지

쉴 틈 없이 아이들을 봐주셨다.


그때 나는 철없게도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며 화를 내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걸 다 받아주셨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신수양이 필요한 딸이다.

왜 딸들은 엄마가 제일 만만하고 화를 쉽게 낼까?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 뺄 수 있는 힘도 없으면서 마음이 아픈 말들을 내뱉으니까 말이다. 드라마에서 부모에게 막말을 해대는 자식의 모습을 보면 나도 같이 욕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엄마에게 살가운 딸이 되어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 날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말로 인해 상처를 받으실 엄마의 마음이 마음에 걸려 엄마에게 집에 있는 새 반찬 들을 싸드리기도 했으며 월급날에는 적은 돈이지만 챙겨드리기도 했다.


적은 액수의 돈인데도 받으시면 미안해하시는 엄마의 얼굴, 반찬을 챙겨드리면 너희 먹을 것은 있냐면서 걱정해주시던 얼굴,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을 봐주셔도 가시기 전에는 손자들을 안아주시는 모습,

직장에서 돌아온 딸이 이제 다시 육아를 해야 하니 효정이 너 힘들어서 어떡하냐며 걱정해주시던 모습,

손자들을 평일날 계속 봐주시기 때문에 본인의 시간이 없으셨던 엄마의 그 소중했던 시간들.

조금이라도 일거리를 줄이기 위해 집안 설거지를 하셨던 그 모습들, 이런 모든 모습들과 엄마의 희생으로 인해 나는 직장생활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희생하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며, 동기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힘든 날에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실 수 있는 여유와 일을 하지 않았다면 둘째를 키우니라 밥을 못 먹었을 시간임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점심 하나는 편하게 먹을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을

나는 누릴 수 있었다.

지금은 나는 쉬고 있지만, 만약 또 일을 한다고 하면 엄마께서는 분명 아이들을 아무 말 없이 봐주실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딸의 집으로 출근을 했던 무수히 많은 나날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를 쉬게 해 드리고 놓아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사랑은 받을 만큼 받아왔으니

나는 이제 그 모든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게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자식의 인생을 봐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엄마이기 때문에 꼭 해야 할 일도 아님을 알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그 사랑을 반대로 베풀어야 할 시기가 왔다. 더 이상 짜증내고 화내는 그런 딸이 되기보다는 순둥이면서 해맑은 엄마밖에 모르는 딸로 엄마의 곁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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