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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29.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치고받고 싸워도 다시 즐겁게 노는 너희들을 보며

아이를 처음으로 키우면서 육아란 정말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구나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첫째 아이를 키우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인 시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이란 녹록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걷는 것에 재미를 붙인 둘째가 집안 곳곳을 누비며 이리 쿵 저리 쿵하기도 하며, 형아를 따라서 소파에 올라가기도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떨어진 적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에 첫째를 업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낙상 사고를 겪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 자체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리고 식탁 의자를 올라간다거나 소파에서 짧은 3등신 4등신의 다리로 분명 점프로 뛰어내리는 게 안 되는 첫째와 둘째를 볼 때면 가슴이 불안했다.


다행히 첫째는 그 사고 이후에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기억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사고 이후에 조심을 하면서 첫째를 키웠는데 둘째가 태어나자 하루에도 마음을 졸여야 하는 순간순간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째가 자신을 귀찮게 하는 둘째를 손으로 밀어버릴 때나, 머리 끄덩이를 잡고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속에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저렇게 까지 노는 거지 라는 생각과,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나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내 마음을 정리를 하며 아이를 덜 혼내기 위해 글을 쓰는 이유도 있다.


분명 아직 첫째는 어리기 때문에 아직 4살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 거 일수도 있겠지만 집안일을 하다가 느닷없이 둘째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딘가 손을 다친 걸까?

걷다가 넘어진 걸까?

코로나로 인해 종합병원 가기도 힘든 요즘 집에서 다치게 된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렇게 우는 소리를 듣다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장갑을 벗어던지고 아이에게 가서 상태를 본다.

하지만 아이가 다친 곳이 없으면 조심히 다녀야지 라는 말을 하고는 집안일은 끝내 놓는다.


그리고 거실에서 두 아이와 있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첫째와 둘째가 잘 놀다가 갑자기 화를 내거나 징징대거나 울게 된다.

아직까지는 첫째를 혼을 더 내는 편인데, 이 혼내는 것도 아이에게 옳은 행동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의 언어로 소리쳐서 화를 내면 그 순간은 아이가 알아들었을 것 같은데 돌아서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게 내심 미안해진다. 그런데 나는 이걸 하루에 한 달에 몇 번이고 반복을 한다.

그렇게 둘 다 혼을 내고 나면, 나는 정말 미안한데 두 아이에게는 내가 공공의 적이라도 된 듯이 결속력이 생긴 것처럼 다시 같이 놀며 까르르하고 웃는다.





잘 때도 둘은 꼭 붙어서 잔다. 서로 한 행동 때문에 혼이 나면서도 같이 노는 모습을 볼 때면 둘을 낳아서 너무 힘들다 라는 생각보다는 혼자보다는 둘을 낳아서 그래도 잘했구나 혹시 셋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몹쓸 생각이 밀려오긴 하지만 그래도 형제이기 때문에 형제라서 그 둘은 외롭지 않다.

나는 동생이 있긴 하지만 동생에게는 장애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서 나는 동생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없었으며

친구를 가려서 사귀는 성격 탓에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혼자의 모습으로 살다 보니 가끔씩은 외로울 때가 있었다. 나에게도 정상적인 오빠나 언니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외로움을 가장 어렸을 적부터 느꼈던 나라서 적어도 이 아이들들은 서로의 존재로 인하여 외로움을 모르는 아이들로 자랐으면 한다.

분명, 언젠가는 외로움을 타고 우울해지며,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는 날들도 오겠지만

나는 이 두 아이들의 인생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웃는 날이 더 많았으면 한다. 부자로 살거나 사업가로 살게 되거나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거나 이런 삶들은 바라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 의미를 찾고, 행복해지는 아이들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엄마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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