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은 내 맘대로 쓸란다

6화 보잘것없는사람 - 얼마나 두려울까?

by 고용환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다행히도 부대의 배려로 입원하는 기간에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거의 매일 아버지 옆에서 잠을 잤다. 그래야만 했다. 어머니와 동생도 일을 하고 있고 모두에게 고통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에 아버지와 나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살면서 가장 오랜 시간 같이 붙어 있었던 거 같다.


아버지는 항상 밤잠이 없던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일을 할 때도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다. 학창 시절 학교 가기 전에 아버지의 자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일 정도였다. 가끔 외식을 하거나 친척 집에 갈 때를 제외하고 아버지의 깨어 있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이 참 어색하기도 했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병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어쩌면 평범한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했다.


아버지가 병원을 퇴원한 지 8개월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개인 회생은 계속 진행 중이었기에 가족들의 돈으로 빚을 갚아야 했는데 다행히 실업 수당이 청구돼서 아버지 수당으로 일부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했던 것은 아버지가 이런 순간에도 그놈의 경마를 가는 것이었다. 더 얄미운 것은 같이 가자고 하는 아버지 동료가 있었다.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증오스러웠다. 그러나 분노도 잠시,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서 하는 건지 궁금해져 여쭤봤더니 아버지는 그냥 따라가서 보기만 한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냥 다니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을 받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실업 급여 통장에 잔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그 돈으로 경마를 하고 있던 것이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하물며 죽어가고 있다고 해도 절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교육을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다시 아버지와 대화를 했다. 아버지는 참으로 한심한 말을 내뱉었다.


“상속 포기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어. 어차피 죽을 건데 난 그냥 돈을 내 맘대로 쓸란다.”


아버지를 제외하고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결과, 실업 급여를 아버지가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세상 떠나기 전에 절망감과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면 그냥 선물로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하늘은 아버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와 경마장을 다녀온 아버지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몸에 곧 반신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평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니던 아버지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도 태연했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점점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 떨고 있는 불쌍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 거 같았다. 낙관적인 그의 성격도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여러 검사 끝에 뇌에 암세포가 전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중풍에 걸린 사람처럼 변해버린 아버지는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 했던 병간호가 아닌 대변과 소변 그리고 식사까지 옆에서 도와야만 했다. 옆에 누가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밤에 무엇을 찾기 위해서 핸드폰 라이트 켜고 침대 주변을 비추던 중 침대에서 조용히 울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눈물은 소리 없이 얼굴을 타고 베개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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