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우리 가족에게 다시 명절이 찾아왔다. 특별하다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하지만 다문화 가정에 6살 딸아이를 두었고,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리셨다. 남동생은 어머니를 홀로 모시며 직장을 다닌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특별하다는 것이 한 문장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다 같이 모이면 상당히 복잡하면서 혼란스러움이 피어난다. 아들과 며느리는 영어로 대화를 하고 그 사이에 다른 가족들은 침묵을 지킨다. 다행히 딸아이가 이중 언어를 해서 우리 대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나와 동생이 한국어로 대화를 하면 가족은 침묵을 지킨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절단된 상태의 묘한 모습은 계속 연출된다.
이제 결혼 6년 차로 적응될 만도 한데 어머니 치매 때문에 우리는 더욱 정신이 없어졌다. 명절 음식을 차리면 계속 부엌에 와서 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음식을 가지고 몰래 방으로 숨는다. 최근에 증상이 악화돼서 작은 봉투에 든 스낵을 훔치기도 한다. 아내는 강아지 간식이 엄마 가방에 한 가득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급하게 내게 호출을 했다. 딸아이는 외동이라 항상 외로운데 명절에 몇 명 안되지만 사람이 늘어나면 좋아서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사실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나다. 요리에 대한 걱정도 하고 엄마와 가족을 모시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나들이를 가려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명절에는 고맙게 아내가 송평 키트를 주문해두었다. 아침에 우리나라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아내가 차려준 토스트로 가족들이 브런치를 간단히 먹고 송편을 만들기 위해서 다 같이 식탁에 앉았다.
사실 반죽부터 송편을 만드는 것은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그래도 색소를 넣고 흉내를 내서 온 가족이 몇 개 안 되는 송편을 만들었다. 누군가 멀리서 본다면 아주 행복하고 걱정 없는 가족이라고 생각들만큼 화목했다.
내가 어린 시절 명절은 설레는 날이었다. 친척이 많았기 때문에 다 같이 모여서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좋았다. 각종 부침부터 명절 음식 그리고 어른들이 달콤하게 취해서 던지는 장난도 그 당시에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물론 그런 향수를 다시 연출하기는 힘들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어쩌면 내 딸에게 그런 추억의 일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잘 못하는 요리를 하고 다 같이 앉아서 송편을 만들고 공원을 가서 보름달을 보여주면서 나중에 딸이 커서 자식들에게 추석은 설레었다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송편은 맛이 없어서 아무도 먹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도란도란 앉아서 만들면서 웃고 설탕을 입에 넣고 몰래 도망갔던 딸아이의 모습과 치매로 송편의 의미도 잊어버리고 있지만 그저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