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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ug 19. 2023

입원하는데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아프다고 말도 못 하는 중년

퇴사 고민은 결국 결정이라는 고귀한 선택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여기도 괜찮고 저기도 괜찮고 그렇게 다 괜찮은 척 살기보다는 남은 인생 그냥 막살고 싶었다. 

망해도 어쩔 수 없고, 성공하면 좋고 이렇게 가장이 돼서 무책임한 선택을 했다.

그래도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바로 퇴사를 할 수 없는 시스템이니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나의 기준에서 준비는 몸 상태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나가서 계획대로 이루지 못하고 방황해도 버틸 수 있는 초석이기 때문에. 


직장인 건강검진에 이것저것 태어나 처음으로 검사비를 늘려서 검사를 진행했다. 아직 젊고 그동안 별 문제없어서 솔직히 아무런 걱정은 안 했다. 단지 20년 넘게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핀 담배와 가끔 하는 과음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감당과 인정을 하지 못해서 매일 받던 스트레스가 걱정거리였다. 

게다가 요즘 솔직히 몸 상태가 별로였다. 매일 피곤하고 잠을 늘려도 비타민을 더 먹어도 계속 이상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후배들에게 말도 안 되는 공격까지 받고 나는 정신까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나랑 결혼한 가족은 잘 모른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것에 서운한 것도 없다. 말을 하면 오히려 내가 더 화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말을 아끼는 것이고 만약 화가 나서 싸우게 되면 아이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이기 싫어서 외면하고 피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내 선택이니 그냥 사는 것에 적응은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검사 결과가 나를 외롭고 힘들게 했다. 


평소 멀쩡하던 폐에서 뭔가 발견되었다면서 건강검진을 주로 하는 동네 작은 병원은 나에게 큰 병원에 가 볼 것을 권유했다. 아니 권유가 아니라 가라고 했다. 가서 정밀한 검사를 더 받아야 한다고 정확히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계속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제 퇴사하면 한 동안 돈벌이도 영 별로이고 나를 이해할 아내도 아니기에 나의 스트레스는 극도로 올라갈 것이 뻔했다. 그리고 나도 새로운 터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몸은 우선 건강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브레이크 걸린 것이 억울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동생이 떠올랐지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고,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니고, 엄마는 치매로 나와 소통이 불가능했다. 

아내는 개인주의라서 크게 위로가 안 될 것이고, 딸은 8살이라서 이해가 불가능할 것이었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초조하게 대학병원 예약을 하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한 달을 꼬박 기다려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손에는 검사 결과지가 있었다. 선생님은 이것저것을 보더니 내게 가족력이나 상태 등 꼼꼼하게 물어봤다. 불안했다. 나는 결론으로 다가가서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저 암인가요?"


선생님은 아니라고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대신 추가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8가지 검사를 오늘 마치고 집에 가고 추가로 기관지 내시경까지 마치고 최종적으로 보자고 했다. 


속 시원하게 말을 안 해주는 것이 미웠다. 그래도 아쉬운 건 나였다. 


안내를 받고 나가서 추가적인 기관지 내시경 예약을 하기 위해 간호사와 일정을 상의했다.

간호사는 보호자가 꼭 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내시경을 하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냐고 따졌다.

사실 말하기 싫었고, 올 수 있는 사람도 극히 없었다. 결국 무슨 고아쯤 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으로 비치고 말았다. 

나중에 간호사가 직장동료도 된다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순간 다른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을까 생각을 하다가 그냥 알겠다고 하고 예약 날짜를 잡았다. 

중년의 시작인 마흔에 이런 꼴이라니 더 나이 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앞섰다. 

결국 나는 직장 상사에게 말을 하고 편안 후배에게 부탁을 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수면 마취도 아니고 비수면으로 한다는 내시경이 얼마나 합병증이 있는지 그것도 무서웠다. 보호자 무조건 와야 한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결국 하루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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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에게 그리고 친동생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그때 내 입이 열릴 것이다. 

근데 괜히 외롭고 힘이 빠진다. 누군가에게 투정 부리고 위로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나약한 마음이 기댈 곳을 찾는 것 같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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