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엄마 병문안을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

병원 옆 카페에서 엄마를 추억한다.

by 고용환

모든 것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영원할 것처럼 여겼던 시간들도 결국은 마지막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은 남은 시간을 아쉬워하고, 이미 지나간 순간들을 더 오래 붙잡는다. 마지막 뒤에는 더 이상 이어질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도로 이사를 오면서 엄마가 계신 병원과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졌다. 예전에는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310킬로미터를 달려가야 했다. 새벽에 출발하거나 밤을 이용해 길 위를 달려야 겨우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82킬로미터.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차창 밖 풍경이 몇 번 바뀌기도 전에 병원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리만 놓고 보면 엄마는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더 무거워졌다.


물리적인 거리는 줄어들었는데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그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은 늘 그런 식으로 뒤늦게 깨닫는다.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왜 그때 조금 더 곁에 있지 못했는지, 왜 그때 조금 더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는지. 나는 이미 한 번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였다.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면 잦아들 줄 알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반대였다. 해가 갈수록 그리움은 더 깊어졌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기억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두드리고 들어와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다 갔다.

기억이 미운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서운했던 일들은 희미해진다. 섭섭했던 말들, 다투었던 순간들은 어느새 먼 풍경처럼 흐릿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좋았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어떤 저녁의 식탁,
어떤 날의 웃음소리,
어떤 말 한마디.


그 장면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마치 아버지가 조용히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잊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더 두렵다.


엄마와 보낸 시간은 아버지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지금의 엄마는 많이 작아졌다. 몸은 눈에 띄게 말랐고 손목은 놀랄 만큼 가늘어졌다. 손을 잡을 때마다 조심스러워진다. 어떻게 잡아야 할지 잠시 망설여질 만큼 엄마의 몸은 연약해졌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늘 커다란 존재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장면들이 많다.

엄마에게 괜히 짜증을 냈던 날들, 사소한 말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순간들. 아마도 엄마는 그때마다 조용히 울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엄마를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은 어쩌면 그 시간들이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흐른다. 2026년의 달력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한 장씩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시간들은 달력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끔은 멈춘다.

엄마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 도착하면 곧장 병실로 올라가지 않는다.


늘 병원 옆 카페로 향한다.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바로 병실 문을 열지 못한다. 몸은 이미 병원에 도착했지만 마음은 아직 그 문 앞에 서지 못한다. 그래서 잠시 시간을 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마음을 정리한다. 병실 문을 열기 전에 나 자신에게 짧은 준비 시간을 주는 것이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겉모습과 달리 내가 겁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병실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 작은 카페에 잠시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마를 떠올린다.


텔레비전을 보며 늘 당하기만 하는 드라마 주인공을 함께 응원하던 밤들,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며 괜히 투정을 부리던 어린 날들, 친척집으로 향하던 길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평범한 날들이 내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들이었다.


주변에는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그 시간이 아직 너무도 당연한 하루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당연해서 그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 곧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다.


병원 건물로 걸어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엄마가 있는 병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문을 열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손을 잠시 잡을 것이다. 엄마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몇 마디 평범한 말을 할 것이다.


'김여사, 큰 아들 왔어.'

'우리 김여사가 오늘은 피곤하구먼'

'엄마... 엄마...'

'엄마.... 막내아들이 곧 결혼할 거 같아...'

'엄마.... 내가 잘해볼게.. 잘 준비해 볼게.. 어떻게 해서라도...'

'엄마... 금방 다시 올게..'


아마 엄마를 빼고 다른 단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언제나처럼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눈물을 참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시 뒤돌아볼 것이다.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며 또 하나의 시간을 마음속에 조용히 담아둘 것이다.


나는 이 길을 앞으로도 몇 번 더 올 수 있을까?


엄마를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이 짧고도 짧은 만남을 내게 얼마나 허락해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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