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하 Oct 10. 2024

책 속의 글

내 옆의 앉은 아이/아루하/포레스트웨일/10월출판예정

[내 옆의 앉은 아이]는 첫 화에 나오는 수희와 진영의 만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수희는 국민학교 입학식 첫날, 반 친구들의 외면을 받는다. 허름한 옷, 낡은 책가방, 부스스한 머리. 수희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에 이미 색안경을 껴 버린 것이다. 그런 수희에게 진영은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다. 수희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내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런데 수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러본 교실에 빈자리는 진영의 옆자리였다. 진영이 권하기도 전에 앉아버린 수희. 운명적 만남이라고 치부하기에 이 부분은 아깝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아이의 시선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지금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1학년, 진영처럼 수희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 만약 나라고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처럼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말을 걸기는커녕 나 역시 내 옆에 앉으면 어쩌나 걱정했을 것 같다. 그리고 수희가 자신의 가난한 삶에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여겼다면 항상 주눅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희는 그러지 않았다.


진영에게 수희는 반 친구였다. 빈자리가 자기 옆자리밖에 없음을 인지했고, 수희에게 알려주기 위해 손을 들려고 했다. 비록 그전에 수희가 앉아버렸지만, 상관없다고 여긴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에서 일 것이다. 나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수희와 진영을 말하고 싶었다. 이 사이에 공통점은 존재한다. 그러나 다른 점은 없다. 국민학교 1학년이라는 어린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반 친구들과 진영의 행동은 분명 틀리다. 


왜냐면 사람들 속의 수희는 다르기 때문이다.


진영은 수희의 첫 만남에서 특별한 게 없었다. 수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위한 마음 역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었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부당한 대우를 하는 교사나 반 친구들에게서 수희를 보호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수희는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소외계층, 그래서 봐줘야 하는 사람으로 비춘다. 나는 이 시선을 바꾸고자 이 글을 썼다.


사람이라는 공통점에 있는 이웃이라는 것이다.


소설에 담고자 했던 것은 소외계층, 빈부 격차, 가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소그룹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라는 공통점에 있는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제일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그것을 소재로 가져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런 마음으로 썼으니, 나와 같은 마음으로 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당신에게 남은 색안경이 있다면 벗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의 기억 속에는 진영이 남았으면 좋겠다. 진영이 수희에게 한 모든 것들이 과연 어디서 시작하고 어떻게 끝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울 것 같다.


이전 03화 교정/교열/수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