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시
하나의 일화 같은 시입니다. 읽다 보면 영상 되는 장면이 있을 것입니다.
비를 흠뻑 맞은 낙엽을 지나가는 행인이 줍습니다.
낙엽을 줍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과 다르게 바닥으로 몸을 숙여야 합니다.
물기로 젖은 낙엽을 집어야 하죠.
이것은 쉬운 행동이긴 하지만, 쉽게 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할 때 망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망설임 순간에 기회를 잡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것을 얻게 되죠.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아실는지요?
글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작가이지만, 글을 해석하는 사람은 독자이기 때문이죠. 저는 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 오늘 새벽 내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멋진 시를 쓰기 위해서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무언가를 고민하면서 말이죠.
저는 소설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10월 중순이면 종이책으로 세상에 나올 것입니다. 교정, 교열도 끝났고, 표지와 기타 부수적인 것만 결정하면 됩니다. 출판사에서는 2주 이내라고 하더군요. 이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제 책을 분석하고, 해석했습니다. 제가 쓴 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막무가내 의미를 부여해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작가의 글은 책의 미리 보기에 배치됩니다. 저는 이 작가의 글에 신중을 담았습니다. 처음에는 홍보용을 위한 글 일었지만, 가장 출판할 책과 비슷하기도 했습니다. [내 옆의 앉은 아이] 제목을 정할 때도 심사숙고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이 책과 가장 어울리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제목!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인들을 총동원에 던졌습니다. 책을 보며 느끼는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나서야 겨우 마음에 드는 하나를 얻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쓰면서도 과연 나는 이 책에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담았는가? 여기에 고민했습니다. 수십 번의 퇴고와 교정교열을 위해서 여러 번 읽었지만, 다시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떤 식으로 표현되었는지 확인을 한 거죠.
시는 한 편의 짧은 것으로 끝나는 글이지만, 저의 소설은 1년의 시간 속에 고민하고 고심하고 수정하는 긴 작업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저의 고심을 반영된 글이기도 하다. 제가 [내 옆의 앉은 아이]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간의 기회가 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다행히 담겼습니다. 그걸 알아주느냐는 독자의 몫이긴 하지만, 가벼운 소설 속에 담은 무거운 소재가 그리 어렵게 다가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소설이 가지고 있는 그런 평안함은 지니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