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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루하 Oct 30. 2024

엄마를 보내는 미소

21화

“그건 말이죠? 그때 명호가 엄청나게 우울해했었거든요. 엄마는 그때의 명호를 잊을 수 없어요. 자기 때문에 자신을 방안에 가둬버렸던 명호가 다시 그렇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물론 미소 씨 때문에 다시 그렇게 될 일은 없지만, 그냥 염려가 걱정이 되어서 엄마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거죠. 명호가 그러지 않대요? 시간이 지나면 엄마도 포기할 거라는 말?”

“했어요. 그런 말.”

“그거 이거 두고 한 말이에요. 자기 스스로 만든 걱정을 그만하실 때가 분명 올 거예요. 엄마도 아실 거예요. 

본인이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포기라는 말에 ‘욱’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가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는 어두운 면 따위는 전혀 없을 거라 알려고 하지 않았던 내가 후회스러웠다. 엄마한테 했던 모른 척 하기를 어느 순간 그에게도 하고 있었다.


“제가 너무 명호 씨를 몰랐네요. 좀 더 알려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어머, 미소 씨, 엄청 착하고 귀엽네요. 그런 생각할 줄은 몰랐어요. 다행이에요. 명호가 좋은 짝을 만났네요. 우리 자주 봐요. 캠핑 가끔 따라와도 되죠?”

“그럼요.”

“눈치 없는 아줌마라고 뒤에서 흉보면 안 돼요.”


부끄러워 고개를 돌려 열을 식혔다. 그런 나를 보며 지윤은 그가 웃듯이 웃었다. 오누이가 많이 닮았다.


“참, 엄마 빼고 나, 그리고 지호, 아빠는 미소 씨 반대 안 해요. 오히려 늙다리 데리고 가줘서 너무 고마워요.”

“지호?”

“아직 못 봤죠. 저보다 5살 어린 여동생 있어요. 아직 얘가 없어서 제부랑 둘이서 맨날 놀러 다닌다고 저도 얼굴 본 지 꽤 됐어요. 언젠가 시간 되면 같이 밥이나 먹어요.”

“네.”

“그리고 엄마한테는 티 내기 없기요. 엄마 서운해 해요.”

“네. 그럴게요.”


밖에서 솔빛에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와 달리기 시합을 했는지 거친 호흡 소리가 텐트 안까지 후끈하게 만들었다.


“이제 삼촌 저 못 이겨요. 내가 무슨 초등학생인 줄 아시나. 어서 5만 원 줘요.”

“또 돈내기 했어?”

“용돈을 그냥 주면 재미 없잖아.”

“잘났다.”


그와 둘이 오붓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부쩍부쩍 보내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지윤은 그보다 훨씬 요리를 잘해서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둘은 밤이 새도록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미소 씨. 혹시 명호 지난 여자 친구 이야기 알아요?”

“아뇨. 잘은 몰라요.”

“누나, 그만해요.”

“이미 지난 일인데, 뭘!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부터 바람난 여자 친구까지 전부 차였어요. 알아요? 저놈이 다 차인 거야.”

“아니거든요. 미소 씨, 아니에요. 믿지 마요.”


그의 다급함이 다 거짓은 아니구나 싶었다. 지윤은 요리만큼이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다. 솔빛은 나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자기가 크면 자기와 결혼하지 않겠냐고 물어와 그의 화를 돋웠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보통의 가정집에 시끄러움이었다.


저녁이 되었다. 솔빛이 자꾸 나와 자려고 했지만, 그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지윤은 자기 차의 시트를 내리고 거기서 자고, 그와 솔빛은 텐트 야전 침대 위 침낭 속에 몸을 눕혔다.


"춥지 않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침낭 안에 전기 장판이 있어서 따뜻해요."

"그러면 다행이에요. 저 들어가서 잘게요."

"잘 자요. 미소 씨."


겨울에 밤하늘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문득 이 매력을 그와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부끄러웠다. 이 좁은 곳에 그와 단둘이 누워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귀까지 빨개지는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엄마의 꿈을 꾸었다.          


“딸? 행복해?”

“응, 행복해, 엄마. 나 너무 행복해.”

“다행이네. 우리 딸 행복해서 너무 다행이다. 엄마 이제 안심할 수 있겠네.”


마지막 작별 인사 같은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의 행복이 엄마의 숙원 사업이었던 것일까? 이제 그 꿈이 이루어졌으니 영영 오지 않는다는 말인 것일까?


“엄마, 이제 못 보는 거야?”

“아니. 엄마는 늘 미소 곁에 있을 거야.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지.”

“보이면 안 돼?”

“미소야, 산 사람은 살아야 하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 거야. 그게 순리인 거야. 


엄만 조금 늦게 순리를 따른 거지. 아쉬워하지 마.”

아쉬워 말라는 말까지 서운했다. 어떻게 아쉬워 안 할 수가 있을까? 다시 볼 수 없다는 말이 어떻게 엄마는 저리 쉽게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미소야, 엄마도 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널 위해서라도 엄마는 원래 내가 있어야 하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아. 넌 이제 네 삶을 잘 살 수 있게 됐잖아. 의심하지 마. 너는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어.”

“정말?”

“그럼, 정말이지.”

“장담해?”

“장담해. 엄마가 장담해.”         


그렇게 엄마는 영영 사라졌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엄마는 꿈에도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혹여 내가 진짜 힘들면 그때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도 그런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에게 놀랐다.


그날 저녁, 어김없이 그가 왔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고 바로 달려가 꼭 안기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명호 씨!”

“네? 그래요? 저도 보고 싶었어요. 근데 왜 이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당신이 오늘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만 저도 모르게 안고 싶었어요.”

“우리 공주님이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요. 제가 지겨울 때까지 안아 줄게요.”


그는 나를 꽉 안았다. 그로 인해 두근거리던 심장이 진정이 되었고, 보고 싶은 엄마의 대한 미련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그에게서 떨어지면서 나는 어젯밤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이해해요. 언제든지 안겨요. 제가 몇 시간이고 안아 줄 테니까.”

“역시 당신이에요.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요? 어머님한테 혼 안 났어요?”

“제가 맨날 혼만 나는 줄 아세요?”

“아니에요?”


당연하듯이 대답하는 나의 코를 아프게 잡았다. 그로 인해 붉어진 코를 어루만지며 그를 잠시 노려보자, 갑자기 이마에 키스를 한다. 순간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렸다.


“처음도 아니면서.”

“커피, 커피 줄게요.”


일어나는 나의 손을 그가 잡아당겼다. 다시 안은 그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혼났어요. 오늘도 결혼 컨설팅 회사 가자고 난리 치셨죠. 하지만 저는 여기 있고, 제 마음도 몸도 모두 여기 있어요. 당신을 안고 있는 지금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달콤한 말도 잘하는 그였다. 나는 쑥스러워 못 하는 말도 그는 잘도 했다. 


“그리고 좋은 소식도 있어요. 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금요일에 밖에서 보재요. 당신 정식으로 보고 싶으시대요.”

“진짜요?”

“거짓말할 이유 없죠. 진짜 보고 싶대요. 볼래요?”

“당연히요. 아버님 어떤 스타일 좋아하세요? 뭘 입고 가야 하지? 아, 저 옷 별로 없는데 옷 사러 가야겠어요. 그래도 정식으로 보는 건데 잘 보이고 싶어요.”

“당신답게 입어요. 굳이 꾸밀 필요 없어요. 아버지도 그걸 더 좋아하실 거예요.”

“저 다운 옷? 그게 뭐예요?”

“청바지에 편한 티셔츠?”

“그건 예의가 아니죠. 어른 만나는데….”


미소는 오랜만에 자기 방문을 열었다. 전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입은 원피스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나다운 모습이라고 그가 말하니, 오히려 더 고민이 된다. 한 번도 나다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저기, 명호 씨?”

“네.”


언제 왔는지 내 방을 구경하고 있던 그가 부드럽게 답한다.


“저는 어떤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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