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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흔적

혼밥 여정, 나 혼자도 괜찮아

당신의 혼밥은 안녕한가요?/수필

by 그래

내가 혼밥을 처음 한 건 2020년 3월 어느 날부터였다. 개인적인 이유로 집을 나와 잠시 혼자 살게 된 몇 개월의 시간 동안 혼밥은 거의 생활이었다. 처음엔 식당에 가는 것조차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시장에서 반찬을 사 와 햇반을 돌려 조촐한 상을 차려 먹는 것으로 만족했다. 혹여 물릴까 여러 가게에서 장을 봐와 먹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 일주일 정도 지나니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먹는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집에 있을 때도 제때 끼니를 챙긴 적이 없다 보니 어느새 먹는 횟수보다 안 먹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처음으로 배고픔에 밖을 나왔다. 식당을 기웃기웃 혼자 밥 먹을 것을 찾아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혼자 있는 사람들이 많은 국수를 주메뉴로 하는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평소 주문을 하더라도 집에서는 딸이 했고, 친구와 있을 때는 친구가 했기에 키오스트 앞에서 한참 서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거니와 뭘 먹을지 생각하지도 않고 들어왔기에 더 당황하고 말았다.


손에 땀이 밸 정도의 긴장감에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뭘 주문했는지 기억도 없이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생뚱맞은 국수와 김밥. 평소 다 먹지도 못할 두 개의 음식 앞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인데, 이게 뭐라고 기억도 못 할 주문을 했는지 웃음이 나와 멍하니 음식만 바라보다 이왕 시킨 거 먹다 배부르면 남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수저를 들었다.

처음 하는 혼밥이라 그럴까?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는 모습이 오히려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다 앞쪽에 앉은 여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했고, 얼떨결에 나 역시 인사했다. 그러나 그뿐. 우린 다시 각자의 식사에 집중했다.


평소에도 빨리 먹는 나는 그날따라 더 빨리 먹었다. 다 먹지 못한 국수, 반밖에 못은 김밥 음식이 아깝다 생각되었지만, 오랜만에 먹은 음식은 내 배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부른 배를 안고 다시 시장에 가 반찬과 필요한 생필품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식당에서 하는 혼밥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편해졌다. 키오스트 사용법에 익숙해지는 시간만큼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혼밥은 진화했다. 배달을 시켜서 하루 동안 나눠 먹는가 하면 포장을 해와서 집에서 먹기도 했다. 가끔 친구들과 먹는 끼니는 특별한 외식이 되었다. 혼밥은 처음엔 힘들었어도 먹다 보니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리는 자연스러움이 되었다.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혼자 어떻게 살지 고민하던 것이 무색하게 잘 살아낸 나는 혼밥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쯤 다시 원래 살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8개월가량 짧은 외출에서 혼밥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나는 무사히 잘 적응하였고, 외출로 인해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3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혼밥 하라고 한다면 나는 할 수 있나? 질문을 던져 본다. 처음은 긴장하더라도 두 번째는 할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다. 조용히 나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식사하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으니 말이다.


작성일 : 2024년 어느 날, (자료 복구로 작성일을 모름)
출판사 : 작가와
구매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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