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모여 추억이 되었다/엽편소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별이 쏟아지는 밤에 아무도 걷지 않는 눈길을 걸으며 발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소원 하나는 완성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얀 방, 하얀 이불, 줄무늬 옷에서 벗어나 세상이라는 색 속에 나도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나는 혼자 일어나기는커녕 앉지도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보는 것 하나밖에 없다. 생각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눈을 뜨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까?
“일어났어? 연화야?”
눈을 한번 깜박인다. 엄마는 나의 이마에 입맞춤하며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기분은 어때?”
다시 한번 깜박인다. 긍정은 한번, 부정은 두 번 엄마와 나의 약속이다.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아빠는 올 때마다 헷갈리는지 엄마에게 매번 묻는다. 표정도 없고, 오로지 눈 깜빡임으로 대화하는 이상한 가족이다.
“오늘 날씨가 참 좋아. 연화야, 창으로 보기엔 봄 같지? 그런데 겨울이야. 햇볕이 뜨거워서 선글라스를 써야 할 것 같아.”
그런 날이 있었던가? 내 나이가 몇 살이더라? 마지막 기억이 23살이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작은 자동차이긴 했어도 처음으로 자기 차가 생겼다고 웃던 수빈의 웃는 얼굴이 선하다. 여전히 아름다울 수빈이는 운전대를 잡으며 약속했다.
“걱정하지 마. 나 운전 경력 무사고 3년이다.”
그날 옆자리에 앉은 건 나였고, 뒷자리엔 혜진과 민지가 앉았다. 우리의 목적지는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던 양평이었다. 가고 싶은 맛집 지도와 멋진 펜션까지 우리의 일정은 알찼다. 민지가 추천한 맛집은 믿을만하다. 먹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전국에 맛집 여행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방학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밥 먹으러 갈 만큼 먹는 것을 진심으로 대하였다. 혜진은 새침데기 시골 아가씨였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그녀의 집은 강원도 산골 깊은 산 중에 있다고 했다. 이번 여행이 끝나는 날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이미 부모님과 이야기를 끝냈다. 아침 일찍 우리 집에서 만나서 엄마가 챙겨준 김밥을 오물거리며, 고속도로를 탔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그렇지? 민지야?”
수빈이 웃으면서 민지를 쳐다봤다.
“응. 하늘도 우리의 여행에 동참하나 봐.”
“그런가?”
평일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었고, 한참 수다를 떨다 민지가 소리쳤다.
“고속도로 출구 쪽에 오래된 칼국수 집이 있어. 먹고 갈래?”
면을 좋아하는 혜진의 눈이 반짝인다.
“칼국수?”
민지는 혜진을 보며 웃었다.
“응, 거기 깍두기가 진짜 맛있어. 지금 가면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어차피 식도락이 목적이니까 갈까?”
수빈이 나를 쳐다보더니 바로 깜빡이를 켠다.
“가자. 우리에게 시간은 많다.”
민지가 추천하는 음식을 먹기 위해 중간에 고속도로에서 빠졌다. 막 톨게이트를 지나 아무도 없는 삼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수빈은 신호에 맞춰 좌회전했다. 좌회전으로 인해 몸이 기우뚱거렸고, 그조차 즐거웠던 우리의 차는 웃음꽃이 한창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주 짧은 눈 깜빡임에 우리는 헤어져 버렸다. 대학 1학년 입학식 때 만나 한 번도 헤어진 적 없던 우리가 4년이라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영영 만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없다. 눈을 떴을 땐 이미 5년이 지난 후였다. 수빈과 민지는 이제 다시 볼 수 없고, 혜진은 민지가 온몸으로 감싸준 덕에 겨우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다신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여전히 나를 보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는지 그 이후로 소식만 들었다.
내가 눈이라도 뜨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눈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나는 살아있는 게 다행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왜? 연화야?”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엄마는 내가 우울한 걸 금방 눈치챘다.
“연화야, 창문 열어줄까?”
“어머님, 연화 씨 감기 걸리면 안 돼요.”
언제 들어왔는지 담당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담당의는 이지우, 나와 동갑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사실 부모님은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이 있다. 그건 우리 사이가 친구라는 사실이다.
“알죠. 조금만 열면 안 돼요? 우리 연화가 겨울을 좋아하거든요.”
“알아요. 제가 어머님과 알게 된 게 몇 년인데, 당연히 알죠. 하지만 안 돼요. 대신….”
그녀는 머리맡에 침대를 올려주었다. 그리곤 창가에 커튼을 치고, 밖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창밖에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로 열심히 걷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생과 사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바빠 보였다.
“오늘 기분은 어때요?”
기분이 좋지 않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듣기 원하는 대답만 했다. 부정한다고 한들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가 더 힘들었다. 그때 의사 친구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화장실 가셨어요.”
나는 두 번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내 표정을 풀었다.
“연화 씨는 눈 좋아해요? 이번 주 일요일에 첫눈이 올 거래요. 믿을만한 일기예보는 아니지만, 그즈음에 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엄마와 그녀가 대화하는 동안 간호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들렸다.
“그래요? 선생님. 남편보고 올 때 연화 숄 가져오라고 해야겠어요. 외할머니가 연화 고등학교 때 생일선물로 만들어준 건데, 연화가 그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네. 어머님. 전화는 밖에서 아시죠?”
“당연하죠.”
나의 몸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달려있다. 혼자 호흡할 수 없기에 기계의 도움으로 숨을 쉬고, 먹고 싸는 것까지 내 힘으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의식을 찾은 1년 동안의 시간은 부모님에게는 기적일 테지만, 솔직히 나는 싫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엄마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뜨지 말까? 엄마보다 내가 눈을 뜨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자유는 3시간 만에 끝났다. 아침이 한참 지나도 눈을 뜨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간호사를 몇 번이나 부르더니, 의사 선생님께 몇 번이고 전화를 해댔다. 바쁜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와 나를 이리저리 살폈다. 괜한 고집에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의사 친구는 나의 손을 꼭 잡고 토닥이면서 속삭였다.
“괜찮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나의 고통을 이해 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그걸로 되었다. 그녀가 와서야 눈을 뜬 나를 보며 엄마는 몇 번이나 물었다.
“연화야, 엄마 목소리 들려?”
그날 그 물음에 몇 번이나 답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그날 이후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결국 아빠가 온 일요일에는 쓰러졌고, 아빠에게 나를 맡긴 후에 안정제를 맞고 잠들었다. 온다던 눈은 오지 않았다. 아빠는 반나절을 함께 있었다. 나만 보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빠는 가끔 나의 체온을 쟀다. 그걸로 생존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돌아가고, 안정제를 맞고 잠든 엄마를 대신해 의사 친구가 왔다.
“오늘 쉬는 날이야. 연화야. 힘들지?”
그녀와 이야기할 때는 아무 반응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용케 내 대답을 알았다.
“이건 내가 처음 말하는 건데, 사실 너와 나 고등학교 동창이다. 우린 같은 반인 적이 없어서 아마 넌 기억하지 못할 거야. 그래도 난 상관없어. 내가 널 확실하게 기억하니까. 소심한 나에게 꿈을 만들어준 게 너거든. 고등학교 1학년 때였어.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 놀다가 다쳤거든. 내가 의약용품을 가지고 다녀서 치료해 주고 있으니까, 네가 그랬어. ‘와, 의사 같다. 너 의사하면 잘하겠다’라고 말이야. 그때 처음으로 꿈이 생겼어. 나는 누가 아픈 게 제일 싫거든. 너도 고쳐주고 싶어. 내가.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어. 그래서 답답해. 연화야.”
의사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울었다. 그때 창밖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올해 첫눈이었다. 의사 친구는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을 쳐다봤다. 머리맡을 올려주고 나를 보았다.
“첫눈이야. ……. 연화야?”
의사 친구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에 내가 비쳤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의 모습이 말이다.
“고마워. 연화야.”
그녀에게 희망이 생긴 듯했다. 그때 링거를 꽂고 들어온 엄마는 나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첫눈이 준 선물인가 보다. 생과 사 중 사를 선택한 나에게 신은 생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젠가는 나의 소원 하나도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작성일 : 2024년 10월 15일
출판사 : 포레스트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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